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서울 광화문 일대의 한 호프집에서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 행사를 열고 국민들과 깜짝 소통에 나선 것은 집권 2년 차 들어 서민경제난으로 흔들리는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국정의 방향을 가다듬기 위한 차원으로 이해된다. 현 정부 들어 추진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시민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고 제도 개선사항을 점검하려는 차원이다. 이날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인 줄 모른 채 초대돼 행사장을 찾았던 30여명의 시민들은 오후6시58분쯤 문 대통령이 호프집에 입장하자 놀라움에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며 맞이했다. 문 대통령은 행사 개시 직후 모두 발언을 통해 “다들 좀 놀라셨죠.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는 것으로 알고 계셨을 텐데”라며 입을 뗐다. 이어 “제가 지난 대선 때 국민과 소통 잘하겠다고 약속드리면서 퇴근길에 시민들과 만나겠다고 약속했었다”고 깜짝 만남의 취지를 소개했다. 이어 “요즘 최저임금, 노동시간, 또 자영업, 그리고 고용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이야기가 되는 그런 상황이어서 그런 말씀들을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음식점주인 이종환씨가 건배사로 “대한민국 사람들 다 대통령께서 아끼고 사랑해 주십시오”라며 이를 줄인 ‘아싸’라는 구호로 건배사로 외친 뒤 제언에 나섰다. 이씨는 “정부에서 정책을 세울 때 생업과 사업을 구분해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자영업자들이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영업실적이 최저임금 근로자만도 못해 종업원을 안 쓰고 가족끼리 운영하려다 보니 일자리 창출도 안 된다는 취지의 지적이 이어졌다. 23년간 가게를 운영했다는 이씨는 “저는 지금 제 자식에게 물려 주고 싶지 않다”고 힘겨워했다. 다른 자영업 종사자들의 고충 토로도 이어졌다. 편의점주인 이태희씨는 “심야에 (영업해 점주는) 30만~40만원 버는데 심야 아르바이트비가 70만~80만원”이라고 호소했다. 도시락업체를 운영하는 변양희 사장은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제를 발표한 후 퇴근을 빨리하고 야근을 안 하니 도시락 배달이 줄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구조적 개혁은 참 힘들다. (개혁을) 하는 정부도 힘들다”며 “자영업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모색하고 여러 문제에 대해 굉장히 무겁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 분야에서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광천 사장이 고언을 했다. 그는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정책과 관련해 “4인 가족이 월 400만원을 가지고 서울에서 살기 힘들고, 그러나 지방은 아닐 수도 있다”며 “기준점에 집착하는 부분이 있는데 업종별로 지역별로 개별적으로 속도 조절을 할 필요는 있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다. 또한 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된 것과 관련해서는 계절적으로 일감물량의 영향을 많이 받는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상황을 설명하면서 “특히 생산직에서는 굉장히 고통스러워한다”고 소개했다. 정 사장은 “작게 기업 하시는 분들의 창업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기업들이 더 성장할 수 있게끔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도 해야지만 스케일업(기업규모의 성장)도 해야 한다”는 진단도 곁들였다. 건설업체의 한 여직원도 “주당 52시간으로 공사기간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제단체에서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임금 올리는 것은 좋은데, 다른 정책도 같이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직접적 분배정책의 필요성을 문 대통령에게 제언했다.
문 대통령은 행사 마무리 발언에서 “최저임금이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다 연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그만큼 고용시장에 들어와 있는 노동자에게는 도움이 되는데 당장 영세중소기업 등 임금이 주는 현상이 생겼고 그런 와중에 경계 선상에 있던 종사자들은 고용시장에 밀려나 오히려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아직 근본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기류는 문 대통령이 “구조적 개혁은 참 힘들다”며 “과거에 주5일 근무제 했을 때 기업이 감당할 수 있겠냐며 호소했지만 그런 어려움을 딛고 결국은 우리 사회에 다 도움이 되지 않았느냐”고 환기한 대목에서 읽힌다. 최저임금의 지역별·업종별 차등 건의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어려움을 겪는,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 최저임금인데, 직종에 차별을 가하면 취지에 맞지 않기에 쉬운 문제는 아니다”라고 답했다./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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