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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숫자만 나열한 혁신성장 ‘희망고문’ 될라

정부가 13일 혁신성장을 위한 전략투자 방향을 발표했다. 빅데이터·블록체인·공유경제와 인공지능(AI), 수소경제 등 혁신성장의 기반이 될 3대 전략투자 분야의 생태계 구축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5년간 10조원을 이들 분야와 함께 8대 선도사업에 투자하고 혁신인재 1만명도 키운다는 계획이다. 3대 전략투자 분야는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프라 성격을 가진 플랫폼 경제로 제조·유통·공공 부문 등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 분야는 파급효과가 크고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여서 선제 대응하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투자를 서두르면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고 그렇지 않으면 낙오자 신세가 된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유럽 등 세계 각국이 플랫폼 경제에 팔을 걷어붙이는 이유다. 이제라도 정부가 이들 신산업에 정책적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정한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몇 조원을 투자한다고 해서 저절로 플랫폼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규제혁파가 전제돼야 한다. 미국과 중국에서 아마존·페이스북·알리바바 같은 플랫폼 경제의 강자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암울하다. 이전에도 부처마다 4차 산업혁명 주도 분야를 키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헛말이 됐다.

현 정부에서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드는 등 의욕을 보였는데도 지지부진하다. 기득권 눈치를 보느라 규제는 그대로 놓아둔 채 장밋빛 수치만 제시하니 헛바퀴가 돌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최대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지난 7일 성명서까지 내고 “우리는 범법자가 아니다”라며 절규했겠는가. 지금은 재정을 얼마, 어떻게 투입하겠다는 숫자나열식 정책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규제를 빨리 풀어 하나라도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정부는 “더 이상 규제혁신을 방치하면서 변화를 지연시키지 말라”는 스타트업들의 절박한 외침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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