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규정에 대한 정부의 딜레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북한과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고 남북관계 개선이 모색되는 와중에 북한군을 ‘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다소 완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에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줄어들었다는 증거도 찾기 힘들다. 기껏해야 남북이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감시초소(GP) 10여곳을 철수하기로 합의하고 동부·서부 군 통신선을 복구한 정도다.
북핵 위협 역시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전문가 없이 남측과 서방 기자들만 모아놓고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장면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핵무기 폐기나 핵 설비에 대한 신고와 사찰·검증 같은 실질적 조치는 어디서도 보기 힘들다. 오히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한 아무런 징후도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고 해상에서 잠수함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을 건조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북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한반도 안보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고 북의 군사적 위협이 실질적으로 줄지 않았으니 북한 정권과 군은 여전히 우리의 적이다. 비핵화의 성과가 분명히 드러나고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체제가 구축돼야만 이러한 등식이 비로소 사라질 수 있다. 그전에 적 개념을 없애는 것은 시기상조다. 안보는 남북협상에 걸림돌이 된다고,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고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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