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희 한예종 음악과 교수
‘침향무’ 오마주 한 ‘심향’ 초연
23년의 나이차 넘어 음악교감
“그의 예술혼 기억하는 밤 되길”
국경을 넘은 국악의 가능성 확장에 앞장섰던 가야금 명인 고(故) 황병기(1936~2018) 선생의 음악 세계를 재조명하는 ‘2018 마스터피스-황병기’가 오는 18~19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다. 2018-2019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개막작으로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첫날(18일)에는 미스터리한 음향으로 화제를 모았던 즉흥 연주곡 ‘미궁’, 악기의 향기 속에 춤추는 신라시대 불상들을 상상하며 쓴 ‘침향무’ 등 황병기의 대표 명작을 소개하고 둘째 날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최장기(2006~2011) 예술감독으로서 꽃피웠던 결실을 짚어보는 자리다.
황병기 외에 누구도 연주한 적 없는 즉흥 연주곡 ‘미궁’을 처음으로 다른 가야금 연주자의 연주로 감상할 수 있는 데다 황병기가 작곡한 가야금 협주곡 ‘밤의 소리’를 아들 황원묵 텍사스 A&M대학 교수가 직접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하는 등 고인의 대표작과 업적을 두루 살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지만 단연 기대를 불러모으는 코너는 이튿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할 ‘심향’이다. ‘심향’은 작곡가 임준희(59·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가 ‘침향무’를 오마주 한 헌정곡으로 둘째 날 초연한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임 교수는 “영혼을 맑게 하는 청정한 음악을 통해 황병기 선생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음악의 향기를 기억하고 그의 예술적 혼을 재조명하자는 의미를 담았다”며 “침향무의 선율적 윤곽과 주제 선율을 쓰되 단순한 편곡이 아닌 관현악을 위한 합주 협주곡으로 창작해 고인의 예술철학을 이어가는데 의미를 뒀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가 2005년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독일에서 선보였던 창작 오페라 ‘천생연분’ 관련 뉴스를 본 황병기 선생이 직접 임 교수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어오며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 이후 2008년 당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낸 황병기는 임 교수에게 평소 시조문학의 진수로 꼽았던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로 2시간 분량의 국악 칸타타를 작곡해달라고 제안했고 파격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음악 세계를 추구하는 공통점을 확인한 이후 두 사람은 23년의 나이 차를 넘어선 우정을 쌓았다.
임 교수는 “평소 황 선생은 ‘오늘과 단절된 채 옛것만 그대로 한다는 것은 골동품’이라며 국악의 실험과 도전에 앞장섰다”면서 “약 두 달간 작곡하는 내내 한 음 한 음 신중하게 골라 꼭 필요한 자리에만 음을 넣었던 황 선생이라면 ‘심향’이 어떤 곡이기를 바랐을까 떠올리며 곡을 썼다”고 귀띔했다.
그렇게 탄생한 ‘심향’은 원곡 ‘침향무’가 그렇듯 향기를 품었다. 임 교수는 “가야금을 퉁기고 난 후 여운이 이어지며 악기의 향기가 피어오르듯 음이 생동한 후 다시 사그라들 때 잔향을 내는 음악적 아이디어에 집중해 작곡했다”며 “향이 퍼지는 음악적 파문과 여운을 형상화하기 위해 양금, 비브라폰, 마림바 등 색채가 풍부한 타악기를 쓰고 소금, 훈, 생황으로 음향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이미지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임 교수는 “황 선생에 대한 오마주지만 죽은 사람을 위한 곡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곡이 되도록 썼다”고 했다. 황병기의 음악을 들으며 삶을 돌아보고 영적 세계를 탐구했던 사람들이 ‘심향’으로 다시 한번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18~19일 국립극장 달오름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사진제공=국립국악관현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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