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레스토랑 안. 실내에서도 아직 벗지 않은 모자와 테이블 사이 벽 옷걸이에 걸린 코트가 겨울임을 암시하는 가운데, 쨍한 겨울 한낮의 햇살이 가장 환하게 비치는 창가 자리에서 찻주전자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여인은 곧 점심식사를 함께 할 예정인가보다. 레스토랑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시점으로 그려진 이 작품에서는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한 빛의 묘사로 한겨울 바깥의 차가운 날씨와 실내로 들어오는 햇살의 온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듯하다. 그리고 야채와 다진 고기를 볶아 밥과 함께 내는 중국 요리를 뜻하는 ‘촙 수이(Chop Suey)’가 이 작품의 제목이자 두 여인이 만난 레스토랑의 이름이기도 한 것을, 우리는 오른쪽 상단에 절반쯤 잘려서 보이는 간판에서 알 수 있다.
‘촙 수이’는 뉴욕에 살면서 사람들의 도시적인 삶을 주요 소재로 그려 미국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대표작 중 하나다. 오는 11월 뉴욕 크리스티를 통해 진행될 초호화 여행산업계의 거물 바니 엡스월스의 약 80여 점, 총액 3억 달러에 달하는 소장품 경매에 출품될 예정임이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생 다작을 하지 않았던 호퍼의 알려진 회화 작품은 단 360여 점뿐이다. 그리고 그 중 대표작품은 대부분 이미 미술관에 소장되어있어 시장에 나오기 힘들다. 그러니 개인이 소장한 호퍼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인 ‘촙 수이’가 처음으로 시장에 나온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예상되는 이 작품의 추정 가격은 약 7,000만달러이다.
현재까지 경매를 통해 가장 비싸게 팔린 호퍼의 작품은 2013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약 4,000만 달러에 거래된 ‘동풍이 부는 위호켄(East Wind Over Weehawken)’이다. 뉴저지 외곽 도시 위호켄 49가의 집을 그린 이 작품은 펜실베니아 미술아카데미가 현대미술 소장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출품한 것이었는데 작가의 최고 경매 거래가를 기록했다. 그다음으로 비싸게 팔린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은 2006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약 2,700만 달러에 거래된 ‘호텔 창문(Hotel Window)’이다. 호퍼에게 첫 개인전을 열어주었던 평생의 딜러 프랭크 렌이 1957년 한 소장가에게 7,000달러에 팔았던 것을 30년 뒤인 1987년 소더비가 약 130만달러에 거래했고, 1999년 배우 스티브 마틴이 1,000만달러에 구입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번에 ‘촙 수이’가 예상 추정가 이상의 가격으로 팔린다면 작가의 최고 경매 거래가 기록을 두 배 가까이 경신하게 되는 셈이다.
188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호퍼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전신인 뉴욕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1906년 이후로 여러 번 파리를 방문했으나 당시 파리 미술계를 주도하던 입체주의 같은 전위미술보다 오히려 인상파의 빛에 더욱 영감을 받았다. 당시 미국화단은 1913년 아모리쇼를 기점으로 유럽으로부터 소개된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그리고 전후 추상표현주가 주도했다. 하지만 호퍼는 그런 경향에 상관 않고 산업화와 1차 세계대전, 경제대공황을 겪은 미국의 모습을 포착한 리얼리즘의 화가로 고독과 소외라는 주제로 일관하며 독자적인 화풍을 일궈내 비인간화된 당시 미국 대도시의 상황을 통찰력 있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이미 1930년대 초부터 휘트니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1933년 뉴욕 근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회고전은 그의 명성이 더욱 확고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67년 작가가 사망한 후 그의 회화를 포함해 드로잉과 판화 등 작품 약 3,000여 점은 휘트니미술관에 기증됐고, 대표작들은 대부분 뉴욕근대미술관과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호퍼가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은 마치 영화를 연출하는 것과 유사하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작품당 수십 장에 달하는 스케치로 상황과 구도 등을 고심한 후 스튜디오에서 현장을 연출하기도 하며, 그러는 과정을 통해 구상이 완전히 결정되면 붓을 들어 작업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사실주의지만 실제는 현실의 온전한 재현보다는 ‘연출’이 만들어낸 결과이므로 우리는 그의 작품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끼게 된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캐롤(Carol)’에서 등장인물들과 장면 연출의 많은 부분이 호퍼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붉은색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한 주인공 캐롤의 모습에서는 호퍼의 그림 ‘호텔 창문’ 속 붉은 색 옷을 입고 창밖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여성이 오버랩 된다.
호퍼는 평생에 걸쳐 영화광이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은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화가들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감독,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문화계 전반에 걸쳐 폭넓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크고 텅 빈 공간을 채우는 자연광과 인공광,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고독과 절망. 평범해 보이는 현실을 초월한 듯 연출하는 능력으로 평범한 듯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작품이 과연 누구의 품으로 가게 될지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옥션(063170) 국제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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