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을 이야기하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의 절반가량인 600만명이 2차 세계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에 희생됐다. 세기적 비극을 겪은 뒤 후대 유대인들이 뼈저리게 간직한 홀로코스트의 메시지는 용서는 하지만 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전후 해외로 이주한 수많은 유대인은 문단과 스크린에서 그들의 아픈 기억을 기록으로 남겼다. 홀로코스트 생존 작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의 회고 소설 ‘더 나이트’, 나치 치하의 자서전적 생존기인 ‘안네의 일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 등이 그런 예다.
통곡의 벽이 고대의 고난과 박해를 기억하는 곳이라면 예루살렘 외곽의 야드 바솀은 나치 대학살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성지다. 정식 명칭은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 야드는 ‘기억’을, 바솀은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다. 희생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내가 이름을 주어 영원히 기억하게 하리라”는 구약성서의 구절에서 유래했다. 이곳에는 200만명이 넘는 희생자 개개인의 이름과 나이·사망일자 같은 기본 인적사항은 물론 수용소 명칭과 수인번호, 심지어 수용소로 끌려갈 때 타고 간 열차 번호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다. 추적 가능한 모든 정보를 수록해 추모관 명칭처럼 기억하자는 취지다.
야드 바솀은 1957년 작은 추모관으로 출발했다가 10년에 걸친 대대적인 공사 끝에 2005년 재단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스라엘이 개관식에 전 세계 40여개국의 지도자들을 초청하면서도 유독 일본을 제외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홀로코스트를 원폭 피해와 견주면서 전범국가이면서도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일본을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주 야드 바솀을 찾아 독일의 과거사 책임론을 강조하며 고개를 숙였다. 메르켈 총리는 방명록에 ‘독일은 과거 범죄를 기억하고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데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적었다. 과거에도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쓴 적이 있다. 2차 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는 무릎을 꿇어 국제사회에 깊은 울림을 던졌다. 침략의 역사를 깡그리 부정하고 망발을 일삼는 이웃 나라 일본의 국격과 지도자의 품격 차이를 엿보게 한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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