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도봉구 도봉동에 위치한 ‘평화문화진지’는 군사시설과 문화시설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원래 분단의 상징인 대전차 방호시설이 있었다. 6·25 전쟁 때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남침해 온 길목에 있어 1969년 대전차 방호시설이 들어섰다. 군사 목적으로 지어졌으나 민간시설로 위장하기 위해 2층에서 4층까지 아파트를 올렸다. 이것이 도봉구 첫 시민아파트이기도 하다. 1층에는 방호시설, 2·3·4층에는 3개 동의 아파트를 세워 군인들이 거주하도록 했고 유사시에 1층으로 내려와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노후화 돼 안전진단에서 위험건축물(E등급) 판정을 받아 2004년에 철거됐다. 군사시설인 1층만 존치돼 건설자재 창고 용도로만 쓰였다.
도봉구는 2016년 분단과 대결의 상징인 대전차 방호시설을 문화창작공간으로 만드는 도시재생 사업을 서울시에 제안했다. 그 결과 같은 해 12월 착공에 들어가 2017년 10월 지금의 평화문화진지가 탄생했다. 흉물로 남아있던 군사시설이 평화를 염원하는 곳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평화문화진지는 총 5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다목적 공연장 등이 있는 시민동(1동), 전시실 등이 있는 창작동(2동), 스튜디오로 이뤄진 문화동(3동), 4동 예술동, 5동 평화동으로 구성돼 있다. 총 길이만 240m에 이른다. 탱크가 있던 벙커는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창작의 꽃을 피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동과 3동 사이에 조성된 평화광장에는 독일 베를린 시가 우리나라에 기증한 실제 베를린 장벽 3점이 설치돼있다. 장벽에는 동독과 서독에서 그린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에는 대전차 방호시설이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벙커를 구성하던 콘크리트와 벙커와 아파트를 잇던 철근 등을 남겨 분단 현실을 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좁고 낮은 병사이동통로의 벽에는 직사각형의 화기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전쟁을 대비했던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2018 한국건축문화대상 심사를 맡은 김미연 청주대학교 교수는 “방치됐던 군사 시설과 세월의 흔적에 전시, 체험, 창작 등 문화시설이 더해져 호기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건축물로 재탄생했다”며 “재미있는 내부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동훈기자 hoon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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