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그로브는 대학생 두 자녀를 둔 부부가 평생 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한옥의 건축 요소를 설계에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앞마당, 뒷마당, 툇마루, 대청마루 같은 다양한 외부공간들이 집 전체를 감싸며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한옥처럼 스틸그로브도 다양한 외부 공간들로 구성돼 있다. 대문을 열면 현관까지 지붕만 뚫려있는 돌마당, 현관과 식당 사이에 중정이 있고 이 중정은 또 앞마당, 거실, 그리고 뒷마당을 잇는다. 앞마당은 2층 데크공간과 연계된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건물의 남쪽면이다. 4차선 도로에 바로 접해 있어 프라이버시 확보가 어려웠다. 외부의 시야는 차단하면서 내부로 빛과 바람을 유입할 수 있도록 스텐파이프 스크린을 설치해 이를 극복했다. 총 4종류의 스텐파이프를 사용해 시야를 적절히 차단하면서 색다른 시각 체험을 선사한다. 울창한 대나무 숲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밤이면 집안의 조명들이 스틸파이프 사이로 새어 나오며 낮 시간과는 다른 느낌의 입면을 형성한다.
심사를 맡은 박종철 네이버스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스틸그로브는 기본적으로 높은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남쪽면은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수직으로 빽빽하게 늘어뜨려 외벽의 거부감을 상쇄시킨다”며 “마치 발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일조량에 따른 그림자의 강약으로 앞마당에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지의 특성상 신축공사를 위해서는 문화재 발굴조사를 해야 했다. 시험 발굴 첫째 날 대상지 내에서 조선시대 석축의 일부분이 발견되었으며 발굴을 완료하였을 때는 대지의 2분의 1이 조선시대 김해읍성 성곽의 일부분임을 확인했다. 설계자들은 성곽이 가지고 있는 ‘보호’ 기능에 착안해 주택의 보호 기능을 높은 외벽으로 강화했다.
설계 관계자는 “김해읍성 성곽이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해줬듯이 스틸그로브의 담장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다”며 “각 마당들은 각각의 방과 접해 채광과 환기 기능을 끌어올리고 거주자에게 다양한 공간감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훈기자 hoon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