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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 대통령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시정연설서 또 소득성장만 강조

저성장 탓에 불평등 커졌는데

과감한 혁신성장 전략은 안보여





나라 경제가 어려운 이때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주의 깊게 들었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실망과 우려가 앞섰다. 지난 1년 반 동안 국내외 최고의 정보와 동향을 접했을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아직도 진보진영 일각의 정서에 묻혀 있는 것 같아서다. 뒤늦게나마 혁신성장에도 힘을 쏟겠다지만 규제혁파보다 재정투입에 기대고 있다. 기존의 성장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경제기조를 바꾸겠다며 제조업의 위기, 노사 문제, 이중화된 노동시장,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대응 등 현안에 대한 대책은 피하고 있다. 따라서 시정연설에서 또다시 강조된 것은 복지가 곧 성장전략이라는 소득주도성장론뿐이다.

소득주도성장론에 의거해 대통령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지난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최대 폭인 9.7%가 늘어 470조원이 넘는 예산안을 국회에 요구한 이유다. 증액 대부분은 복지와 단기 일자리 창출에 쓰인다. 필자도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의 완화를 위해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본다. 복지가 내수에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일부 사실이다. 그러나 복지가 달콤한 성장전략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진짜 필요한 쓴 약은 뒷전으로 밀린다. 집권 1년 반이 지났건만 일부 진전에도 혁신성장이 아직 립서비스에 머무는 이유다. 정보기술(IT) 선진국 한국이 빅데이터 활용은 꼴찌이고 첨단재생의료법이 잠자는 사이 바이오산업의 꽃은 시들고 있다. 원격의료·카풀앱·자율자동차도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익집단·노조·시민단체의 반대 때문에 야당이 아닌 여당이 규제개혁의 발목을 잡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통령은 혁신성장에 국가재정을 더 투입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고 한다. 데이터 등 3대 전략 분야와 8대 선도 사업에 5조1,000억원을 배정하고 청년창업에 1억원씩 지원하겠다는 식이다. 경제 성장이 멈춘 상황에서 과연 재정이 얼마나 버텨줄까.

사회정책을 전공한 필자는 소위 진보진영의 학자나 시민운동가를 학회나 세미나에서 종종 접한다. 이들이 보는 한국 경제의 성장은 어둠에 가려 있다. 시정연설에 누차 등장한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이 그것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고용에 도움이 되지 않고 불평등만 키운다고 본다. 그러나 저성장과 불황이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를 먼저 빼앗아 가고 불평등을 더 키우는 현실은 보지 못한다. 이들은 혁신에도 우려를 표한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불러와 당장은 고용을 줄이고 시장에서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만들어 불평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을 통한 생산성 증가와 경제 고도화가 중장기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보지 못한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한국의 고도 성장은 지금의 중국이 그러하듯이 절대빈곤을 줄이고 중산층을 키워 어느 때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냈다. 2000년대 들어 불평등이 확대된 것은 소득 없는 노인이 양산되는 고령화에 저성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복지로 고령화 문제에 대처하더라도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허약해진 경제를 다시 뛰게 만들 혁신성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익집단과 시민단체들을 설득하고 싸우면서 과감히 규제 완화에 나서고 경제구조를 고도화해나가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대통령들은 늘 복지에 열심이었다. 사회보험을 대폭 강화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시한 김대중 대통령이나 비전2030의 기조하에 공보육·장기요양보험·기초연금·근로장려세제(EITC) 등을 도입한 노무현 대통령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들은 복지를 성장전략의 요체로 여기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재벌개혁으로 체질이 강화된 글로벌 대기업을 만들고 벤처붐을 조성해 대한민국을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만들었다. 노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우리나라 수출기업의 경제영토를 대폭 넓혔다. 문 대통령은 한국 경제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가. 시정연설을 듣는 내내 궁금함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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