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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안성 '미리내 성지']선조들의 천주교 신념…탄압 딛고 우뚝 서다

조선시대 억압 피해 형성된 '교우촌'…한국 가톨릭 뿌리로

김대건 신부 墓·순교자 추모 '봉헌초함'엔 경건함 머물고

순례길 한복판 '103위 시성 기념성당'선 고풍스러운 위엄

고(故) 김대건 신부의 묘가 있는 미리내 성지의 경당.




조선 후기 천주교도들은 신앙을 지키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당시 통치자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거부하고 평등사회를 열망하는 천주교를 무지막지하게 탄압했다. 정조 재위 시절인 1791년 ‘신해박해’로 시작된 천주교 탄압은 강력한 쇄국정책을 표방한 흥선대원군이 어린 아들인 고종을 대신해 실권을 잡으면서 정점에 달했다. 제국주의 열강의 부상 속에 유교적 국가 체계를 강화하고자 한 조정은 1866년 ‘병인박해’를 통해 8,000명이 넘는 천주교도를 학살했다. 무자비한 탄압을 피해 산으로, 골짜기로 모여든 신도들은 ‘교우촌(敎友村)’을 형성하고 사제 없이 스스로 성당을 짓고 미사를 올렸다. 생명줄이 파리 목숨처럼 위태로워지는 와중에도 신념을 저버리지 않은 이들의 역사는 훗날 한국 가톨릭이 빠르게 교세를 확장하는 정신적 뿌리가 됐다.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 있는 ‘미리내 성지’는 19세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시골 마을로 숨어든 신도들이 함께 살았던 동네를 순례지로 꾸민 곳이다. 미리내는 은하수의 순우리말인데 당시 교우들의 집에서 새어나오는 호롱불빛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미리내 성지는 서울 근교의 대표적인 단풍 명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가볼 만한 이유가 충분한 곳이다. 이맘때쯤이면 성지의 순례길을 가득 메운 나무들은 어김없이 붉고 노랗게 물들었다가 찬바람이 불어오면 이파리를 떨군다. 84만9,590㎡의 아늑한 대지에 자리한 성지의 단풍길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고풍스러운 돌담으로 둘러싸인 성요셉성당을 오른편에 끼고 발걸음을 옮기면 새빨간 단풍나무가 펼쳐진 산책로와 만난다. 고요하고 경건한 기운이 감도는 성지에서 낙엽을 밟으며 거닐다 보면 계절의 정취를 물씬 느끼면서 세상일의 복잡다단한 고민을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미리내 성지의 한복판에 ‘103위 시성 기념 성당’이 우뚝 솟아 있다.




미리내 성지가 신자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고(故) 김대건(1821~1846) 신부가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증조부와 아버지 모두 신념과 가치를 위해 당당히 순교할 만큼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김대건은 15세 때 세례를 받고 중국으로 건너가 서양 학문을 익힌 뒤 국내로 돌아와 천주교 교리 전파에 힘쓰다가 서울 용산구의 새남터성당에서 스물다섯의 나이에 순교했다. 이후 17세의 청년 신도 이민식이 시신을 몰래 수습해 비밀리에 안장하면서 미리내 성지는 순교 사적지가 됐다. 김대건 신부의 묘지는 미리내 성지의 왼편 끝자리에 있는 경당으로 가니 모습을 드러냈다. 조용하고 엄숙한 기도원 분위기가 나는 경당 앞에 김대건 신부와 어머니,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페레올 주교,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모셔온 이민식의 묘가 나란히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관용 없는 세상에 태어나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야 했던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봉헌초함’이 보였다. 한 방문객이 옷깃을 여민 채 붉은 양초에 불을 피우고 함에 넣은 뒤 순교자들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미리내 성지의 메인 건축물인 ‘103위시성기념성당’은 순례길 한복판에 우뚝 서 있다. 지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당시 교황은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를 열면서 조선 후기에 순교한 103인을 ‘성인’으로 추대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1991년 건립된 이 성당은 고풍스러운 위엄으로 가득한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많은 여행객의 발걸음을 돌려세우고 있다. 성당 2층에는 천주교도들을 탄압할 때 사용한 고문 도구와 교인들의 순교 장면을 모형으로 형상화한 전시장이 있다. 굵은 몽둥이로 등을 내려치고 주리를 틀어 신앙을 빼앗고자 했던 폭력의 참상이 그대로 전해져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종교든 정치적 신념이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사상과 믿음의 자유는 이렇게 부당하고 야만적인 탄압에 맞서 싸웠던 선조들의 희생으로부터 이룩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미리내 성지는 매일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개방하며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글·사진(안성)=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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