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가라앉는데 물을 퍼낼 생각은 않고 ‘누구의 책임인가’ 삿대질만 해댄다. 여차하면 배는 뒤집힐 판인데 서로 ‘너 때문’이라며 입에 거품을 문다. 볼썽사나운 자유한국당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마치 걸리버가 조난을 당해 찾은 소인국(小人國) 릴리풋의 정가를 풀빵 찍은 듯 닮았다. 이 나라에는 두 개의 정당이 있다. 구파인 ‘트라멕산당’ 의원은 높은 굽의 구두를 신는다. 신파인 ‘슬라멕산당’ 의원은 낮은 굽을 즐긴다. 눈만 뜨면 어떤 구두 굽이 편한지를 놓고 으르렁거린다. 눅진하고 신산한 일상에 지친 백성은 안중에도 없다. 이들 당파 간의 적대감은 너무나 골이 깊어 함께 식사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도 않고 심지어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왕자는 한쪽 발에는 높은 굽, 다른 발에는 낮은 굽의 구두를 신고 뒤뚱거리며 걷는다. 한마디로 광대극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정당성, 친박·비박, 잔류파·복당파 갈등을 놓고 갈가리 찢어진 한국당과 흡사하다. 아일랜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쓴 것은 지난 1726년이다. 292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당을 바라본다면 ‘릴리풋은 저리 가라’고 조롱을 퍼부으며 걸리버여행기 2탄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당의 끝 모를 추락을 씁쓸하게 지켜보는 것은 결코 한국당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건전한 보수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당이 사라져 정부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제동장치가 없어서다. 대한민국 정치의 불행이기도 하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바른미래당 등 보수당의 궤멸과 헛발질에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2년 뒤 21대 총선에서 ‘낙승은 따놓은 당상’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오죽했으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20년 장기집권을 얘기했다가 곧바로 50년으로 기간을 늘렸을까.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오만해진다. 고장 난 시계처럼 제 기능을 못하는 한국당이 자초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의 시그니처 상품인 소득주도성장은 그야말로 무소불위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경영난·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는데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경제운영 시스템은 터럭 하나도 손대지 않고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만 코드인사로 살짝 바꿔놓았다. 10월 기준 취업자 증가 폭은 4개월째 10만명 아래에 머물렀고 실업률은 3.5%로 1년 전보다 0.3% 올랐다.
취업 한탄이 거세지자 부랴부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단기 일자리를 급조하는 꼼수를 부렸다. 너무 심했다고 스스로 판단했던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단기 일자리 수를 하향 조정하는 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국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탓에 나타나는 청와대와 정부, 민주당의 안하무인이다.
북한 비핵화도 매한가지다. 미국과 유엔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나서기 전에는 결코 제재완화를 할 수 없다며 초지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민주당은 CVID는 다그치지 않고 경협에 더 열을 올린다. 마차(경협)를 말(비핵화) 앞에 내세우는 꼴이다. 제재완화를 요청하고 있는 중국·러시아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능한 한국당이 집안싸움에 골몰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당에 처량한 조종(弔鐘)이 울리고 있다. 계파 세력 싸움에 대들보가 흔들리고 서까래가 내려앉고 있는 것을 못 느낀다. 지금 탈각(脫殼)하지 못하면 오는 2020년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죽비의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대한민국이 좌(左)의 날개로만 날도록 내버려 두고 우(右)의 날개를 꺾어버린다면 한국당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건전한 보수세력이 토해내는 만인소(萬人疏)가 들리지 않는가. 상대방을 겨냥한 적개심, 사리사욕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고 자신을 희생하는 혁신의 길로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실낱같은 희망의 작은 끈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보수세력에게 용서를 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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