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이 각종 현안마다 청와대에 끌려가고 있다. 강한 여당 대표를 표방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존재감도 없다. 민주당이 나서서 경제문제와 노동 이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발언들을 주워담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경사노위에 불참한 민주노총을 달래기 시작하면서 탄력근로제를 비롯해 노동·경제 현안에서 여당의 입장 급선회가 시작됐다. 청와대가 이끌고 민주당은 끌려가는 전형적인 ‘허약한 집권여당’의 모습이다. 여당다운 ‘전략·전술’이 없다 보니 이슈마다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며 여당이 서야 할 자리는 더욱 협소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의원총회에서 탄력근로제 연내 입법 포기를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이 “국회에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하겠다”고 발언한 지 하루 만이었다. 이날 이 대표도 민생연석회의에서 경사노위 결과를 반영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야권은 협치 파괴라고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여야정 합의 전에 홍 원내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연내 국회에서 관련 법을 처리해야 한다”며 노동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임혁백 고려대 정외과 명예교수는 “경사노위 출범 전에는 노동계를 압박하다 문 대통령의 ‘입법 유예’ 메시지가 나오니 이제는 경사노위를 거치겠다는 현상은 전략 부재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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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민주노총에 대해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사회적 책임을 물었던 여당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전교조 합법화 등에서도 노동계의 요구에 바짝 다가서는 모습이다. 여당이 180도 달라진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청와대가 전교조 합법화와 관련해 ILO 협약의 국회 비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힌 후다. 여당 중진 의원은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지만 탄력근로제 확대로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노동계를 달래기 위한 불가피한 면이 있다”며 “참여정부 시절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실패한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계속되는 경제 실책에 민주당이 표리부동한 것도 ‘약한’ 여당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소득격차가 더 벌어져 저희도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책 보완을 위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정작 “우리 경제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좋지 않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을 내리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청와대가 직접 여론정치를 동원하면서 정당의 기능이 더욱 허약해지고 있다”며 “강한 당 대표를 내세운 이 대표도 발언을 줄이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분석실장도 “청와대 참모는 일을 하고 민주당이 야당과 협상을 해야 하는데 청와대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직접 나서면서 여당의 대야 협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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