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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매독환주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꾸밈에 현혹돼 정말 중요한 것을 잃는다'

선물 포장이 아무리 화려해도

내용 초라하면 실망하게 되듯

장식·치장 같은 껍데기 아닌

사물이 품은 '본질' 가장 중요





연말연시가 되면 선물을 살 일이 많아진다. 가족과 친지, 그리고 알고 지내던 사람끼리 선물을 주고받으며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하고 건강을 기원하기 때문이다. 선물을 살 때 내용물에 비해 포장이 과도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포장을 뜯고 내용물을 확인하면 겉만 봤을 때와 달리 만족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일찍이 과도한 포장이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 오염을 줄이려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위반한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비자는 어려운 주제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데 뛰어난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이야기를 모아놓은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을 보면 오늘날의 과도한 포장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초나라 사람이 북쪽의 정나라에 가서 옥을 팔려고 했다. 상인은 옥이 더 잘 팔리도록 하기 위해 옥을 담은 상자에 많은 신경을 썼다. 먼저 향기가 나는 목란으로 상자를 만들고 거기에다 또 좋은 향기가 나는 계수나무와 산초나무로 훈증하고 상자에다 구슬과 옥을 박고 보석으로 장식하고 마지막으로 물총새의 깃털로 꾸몄다. 정나라 사람이 시장에서 초나라 상인의 물건을 보고 마음에 들어 그 자리에서 상자를 사고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옥을 돌려줬다. 이로부터 ‘매독환주(賣 木+賣還珠)’의 고사가 생겨났다.



매독환주의 이야기를 얼핏 살펴보면 정나라 사람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매독환주는 중국에서 널리 쓰이는 ‘사원(辭源)’에서 “버리고 취사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풀이하고 있다. 또 ‘사해(辭海)’에서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쫓으며 취사가 합당하지 않다”고 풀이하고 있다. 더 실례를 들지 않아도 다른 사전과 글에서 이와 비슷한 논조의 이야기를 한다. 즉 매독환주는 초나라 상인이 아니라 정나라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야기로 간주된다. 물론 이러한 독해도 일리가 있다.

한비자의 원문을 읽어보면 지금까지 소개한 풀이와 초점이 다르다. 그는 매독환주의 이야기를 통해 정나라 사람이 아니라 초나라 상인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한비자의 말을 직접 살펴보자. “이는 상자를 잘 팔았다고 할 수 있지만 옥을 잘 팔았다고 할 수 없다(차가위선매독야·此可謂善賣 木+賣也, 미가위선매주야·未可謂善賣珠也).” 초나라 상인은 분명 옥을 팔기 위해 정나라로 갔다. 또 정나라에 가서 옥을 팔려고 장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나라 사람은 정작 초나라 상인이 팔고자 하는 옥에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고 옥을 잘 팔려고 포장했지만 결코 팔려는 의도가 없었던 상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 상황으로 바꿔보면 사람이 스마트폰 매장에 들렀지만 스마트폰보다 케이스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백화점에 들러 종이박스를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문의하는 형국이다.



이처럼 고객이 매장의 판매 상품에 관심을 두지 않고 포장지에만 열을 올린다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 당연히 손님이 아니라 상인의 잘못이라고 해야 한다. 한비자도 바로 이런 말을 하고자 한 것이다. 포장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자신이 팔고자 하는 상품이 묻히지 않게 해야 한다. 상품을 살피지 않고 포장에만 신경을 쓴다면 그것은 자신이 팔고자 하는 상품에 자신이 없는 상인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은 협상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람은 처음 만나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날씨와 취미 등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때 정작 하고 싶은 말이나 듣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시간 때문에 회담을 끝내게 된다면 매독환주에 나오는 초나라 상인과 같은 신세가 된다.

고전은 일종의 텍스트인 이상 쓰이고 나면 독자가 얼마든지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지금 정나라 사람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독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한비자가 매독환주를 통해 취사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하면 괜찮지만 정나라 사람을 꾸짖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이제 매독환주는 상인이든 사업가이든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갖고 장식과 포장의 주변적인 일보다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맥락으로 새롭게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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