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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40년째 개혁개방한다는 나라가 있다

최수문 국제부 차장





국가 단위를 포함해 대부분의 조직에서 구성원이 바뀌거나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할 때 ‘개혁’이라는 구호를 내건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은 혁신이라는 용어를 주로 쓴다. 과거에도 정권교체 때마다 비슷한 단어를 들고 나왔다.

그래도 한국은 얌전한 편이다. 이웃 중국은 40년째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지난 1978년 시작했다는 이른바 ‘개혁개방’이다. 이것도 오랫동안 듣다 보니 어떤 경각심을 주기보다 일상생활처럼 느껴진다. 시진핑 시대에 이르기까지 40년간 개혁을 해왔는데도 아직 할 것이 남았다면 이는 그동안 성과가 없었거나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일 듯하다.

중국이 40년 전 개혁개방을 시작했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근대를 기준으로 보면 중국이 서양을 바라보고 국가 차원의 개혁에 나선 것은 1861년 ‘양무운동’ 발동이 처음이다. 앞서 1850년대 태평천국의 난에 시달린 중국은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여 무력을 강화했다. 처음에는 성공적이었다. 서양식 무기로 무장한 중국군은 각지에서 일어난 내란을 진압했고 중국은 부흥하는 듯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거의 궤멸됐던 중국의 패인은 서양식 기술 부족이 아니었다. 당시 실권자였던 서태후는 자신의 개인 별장인 이화원을 짓기 위해 막대한 해군 자금을 전용했다. 이는 최신예 군함 수십 척을 살 돈이었다. 당시 30년간의 개혁이라는 것이 표면적인 기술 도입에 그쳤을 뿐 사고방식까지는 바뀌지 못한 것이다.



중국의 수난은 계속됐다. 청일전쟁 패배로 정치도 바꾸자는 ‘변법자강’ 운동이 일어났지만 실패하고 1900년 의화단의 난 이후에는 왕실 주도로 ‘신정’을 진행했지만 또 실패했다. 결국 1912년 전제왕조 중화제국(청)은 아예 문을 닫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개혁을 표방한 정책들은 계속 나왔다.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민주화와 자본주의화가 동시에 진행됐지만 중일전쟁 와중에 몰락했다. 폐허 속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한 이들은 사회주의를 목표로 내걸고 이전의 역사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급진정책이 등장하고 1966~1976년 문화대혁명으로 절정을 기록했다. 문혁 실패 후 다시 우클릭한 것이 지금의 ‘개혁개방’이다.

40년 동안 유지돼온 개혁개방은 일당독재를 기본으로 부분적인 권한분산·자본주의화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보면 앞서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당 정권의 중화민국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식’ 개혁개방으로 지금 같은 경제 발전이 이뤄졌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공산당은 물론이고 개혁개방이라는 용어 없이도 한국이나 일본은 충분한 발전을 했다. 중국의 속도는 과거의 한국과 일본에 비해 결코 빠르지 않다.

문제는 결국 정치다. 정치적 민주화 없는 경제 발전이 언제까지 가능한지는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할 듯하다. 과거 30여년간의 양무운동도 중화제국을 살리지 못했다. 지금의 개혁개방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나.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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