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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뻐킹 이데올로기"...이념의 장벽 너머로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국민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는데

진영 다툼으로는 미래 담보못해

富國 못만드는 이념은 공론일뿐

굴레 벗어나 담대한 도전 나설때





지난주 영화 한 편, 소설 한 권을 보았다. 강형철 감독의 ‘스윙 키즈’와 송승엽 작가의 ‘답방’이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관할 아래 설치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탭댄스 공연을 준비하는 포로들의 얘기를 담은 ‘스윙 키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한 미군 병사의 외침 “뻐킹 이데올로기(Fucking Ideology)!”였다. 인민군 포로와 피란민들의 삶과 꿈이 이념 앞에서 어떻게 무참히 짓밟히는지를 봤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모티프로 한 ‘답방’을 읽으면서는 “1978년 12월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자본주의 국가와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는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게 되면서…”라는 첫 문장에 시선이 박혔다. 아무래도 오늘(12월18일)이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이 공식화한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회의(11기 3중전회)가 열린 지 꼭 40년째 되는 날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중국은 11기 3중전회에 앞서 거대한 이념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화궈펑 중국 공산당 주석이 “무릇(凡是) 마오쩌둥이 내렸던 결정은 굳건히 유지해야 한다”는 이른바 ‘범시론(凡是論)’을 앞세워 개혁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 재난’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의 피비린내 나는 광풍에 질린 그 시절 중국인들에게 그런 이념적 주장이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결국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흑묘백묘론)”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가 승리를 거뒀다. 이후 개혁·개방에 매진한 결과 중국 경제는 40년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55배나 늘었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 경제의 비중도 1978년 1.8%에서 2017년 18.2%로 커져 미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주요2개국(G2)’ 국가로 발돋움했다.



우리의 ‘한강의 기적’도 1960년대 이후 세계 경제가 7.5배 성장할 때 한국 경제를 40배나 키웠을 정도로 대단했지만 이제는 추억일 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4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년동기 대비 0.2% 뒷걸음쳤고 한국 수출산업은 총체적 위기 속에 최후의 보루인 반도체마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20년간 투자를 안 하고 중국에 다 먹혀서”라는 진단을 반박하기 어렵다. 실제로 올해 10월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4.4%로 위축 속도가 빨라졌고 건설투자는 -6.7%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4분기(-9.7%) 이후 최저 수준까지 추락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좌우로 갈려 ‘소득주도’니 ‘성장주도’니 입씨름만 하고 있다. 국민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 판에 그런 걸 따져 뭘 어쩌자는 것인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모두 공론일 뿐이다.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을 보완하고 기업투자의 걸림돌을 해소해주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그 다짐이 실질적 투자 확대로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나아가 좌우 진영 다툼일랑 접어두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예컨대 얼마 전 ‘한민족 DNA를 찾아서’라는 책을 낸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제기한 ‘부산-시베리아-유럽’ ‘목포-신의주-중국-유럽’ 철도 연결 같은 담대한 도전도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소설 ‘답방’을 쓴 70대 노작가가 말했듯이 “우리 손자들만큼은 통일되고 부강한 나라에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40년 전 중국이 이념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면 지금의 세계 2위의 강국 중국은 없었을 것이고 67년 전 거제 포로수용소에서의 끔찍한 살육전은 맹목적 이념 대결 탓이었다. 영화 ‘스윙 키즈’의 대사처럼 정말로 ‘뻐킹 이데올로기’다.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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