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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로 세상 흔든 뒤샹, 관람객 마음도 흔들다

<'마르셀 뒤샹'展 개막 5주 만에 10만명 돌파>
인상주의서 큐비즘까지 현대미술의 새 장 열어
'샘''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등 150여 점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여행용 가방' 흥행에 한몫

'변기'로 세상 흔든 뒤샹, 관람객 마음도 흔들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한창인 ‘마르셀 뒤샹’ 전시를 보기 위해 개막 5주 만에 10만 명이 다녀갔다. 변기를 전시장에 선보인 그 유명한 뒤샹의 ‘샘’(뒤쪽)과 ‘자전거바퀴’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조상인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르셀 뒤샹’전이 개막 5주 만에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했다. 미술관 개관 이래 가장 빠른 속도다. 설 연휴 기간에도 전시장은 끊임없이 북적였다. 소위 ‘블록버스터’ 전시는 인상주의 미술이 흥행코드이던 것이 세대교체로 인한 취향 변화로 좀 더 현대미술에 근접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뒤샹’ 전시, 왜 뜨거운 것일까.

'변기'로 세상 흔든 뒤샹, 관람객 마음도 흔들다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 2)’, 1912년작,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Association Marcel Duchamp/ADAGP, Paris-SACK, Seoul, 2018

◇현대미술, 논란의 시작=사인을 한 변기를 전시장에 내놓고 ‘샘’이라 명명함으로써 현대미술의 새 장을 연 마르셀 뒤샹(1887~1968). 천부적인 재능을 남들 서너 배로 타고 난 그는 여러 이름의 작가로, 때로는 다른 성별의 인물로도 활약했다. 예술적 영감을 받은 재능있는 화가가 손수 공들여 제작한 것이 미술이라는 고정관념을 부수고 기성품(Ready-made)과 오브제(Object)를 예술 범주에 끌어넣은 것을 계기로 뒤샹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린다.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진 이들이 “저런 작업은 나도 하겠다”는 푸념부터 “대단한 발상”이라는 찬사까지 내놓는 이유도 따지자면 그가 결정타였다. 분명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서 만나는 뒤샹은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특히 전시 도입부를 채운 뒤샹의 초년기 회화작품은 인상주의부터 큐비즘까지, 각종 사조를 빠른 속도로 관통한다. 프랑스의 부유한 집안 넷째 아들로 태어난 뒤샹은 혁신적 미술양식들이 탄생하던 시기 프랑스를 누비며 파리 입체파와 교류했다. 1912년 3월 선보인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는 계단을 내려오는 여성의 움직임을 포착한 동시에 여성 누드를 묘사하는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 충격을 던졌다. 아름답지도 않고 심지어 성별마저 모호한 그림에 대해 뒤샹은 “대상이 아닌 움직임의 추상화”라 했다.

논란거리를 던져 미술계를 휘저은 25살의 뒤샹은 그림에 몰입하던 시기를 떨치고 기계부품과 그 움직임으로 눈을 돌렸다. ‘초콜릿 분쇄기’를 그렸고 그림 위에 흑연과 실을 덧붙이기도 했다. 변기에 앞서 ‘자전거 바퀴’를 하얀 의자 위에 올려둔 작품을 1913년에, 이듬해 와인병 건조용 ‘병걸이’를 전시했다. ‘레디메이드 조각’의 시작이었다. 1915년 뉴욕으로 떠난 뒤샹은 단숨에 예술가와 지성인을 휘어잡는 유명인사가 된다. 기성 질서에 대한 저항이 창작의 원동력이었던 뒤샹은 독립예술가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1917년 R.머트(Mutt)라는 가명으로 출품한다. 그 유명한 ‘샘’이다. 남성용 소변기를 출품한 것을 놓고 전시 감독들이 갑론을박했다. 예술에 반(反)하는 행동이었지만 자체의 순수한 형태로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모색한 것이기도 했다. 1912년부터 8년 동안 제작한 일명 ‘큰 유리’라는 대형 유리 설치작품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그리는 남녀를 짓궂게 보여줬다. 1920~30년대의 뒤샹은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의 자아로 자신을 위장해 고정된 성적 정체성을 허물었다. 1950년대에 은퇴한 척(?) 한 뒤샹은 20년에 걸쳐 아무도 모르게 작업했고 1968년 그가 사망한 뒤에야 방 하나 크기의 디오라마 작품 ‘에탕 도네’가 공개됐다. 이번 전시에는 150여 점의 작품과 아카이브가 출품됐고 ‘큰 유리’와 ‘에탕 도네’는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변기'로 세상 흔든 뒤샹, 관람객 마음도 흔들다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혹은 마르셀 뒤샹에 의한, 또는 에로즈 셀라비로부터 혹은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여행가방 속 상자)’,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소장한 1966년 에디션.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Association Marcel Duchamp/ADAGP, Paris-SACK, Seoul, 2018

'변기'로 세상 흔든 뒤샹, 관람객 마음도 흔들다
마르셀 뒤샹 ‘샘’ 1950년작(1917년 원본의 복제품),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Association Marcel Duchamp/ADAGP,Paris-SACK, Seoul, 2018

◇의문의 ‘여행용 가방’=이번 전시는 흥행과 함께 논란도 품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며 이번 전시에 출품된 ‘여행용 가방’ 때문이다. 뒤샹은 자신의 작품을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 상자와 가죽가방에 넣은 형태로, 이동 가능한 초소형 미술관을 만들었다. ‘여행용 가방’이라 불리는 이 작업은 1941년작 A시리즈 이후 1950년대까지 에디션을 달리하며 300점 이상 제작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2005년 당시 구입 최고가인 6억원 상당(62만3,000달러)에 A시리즈로 구입한 이 ‘여행용 가방’은 김윤수(1936~2018) 전 관장의 경질까지 몰고 왔다. 2007년 중반에 작품 가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비싸게 구입했고 관세청에 작품 반입신고도 하지 않았다는 민원이 접수된 후 문화체육관광부가 감사까지 벌인 후 이듬해 ‘관장 계약 해지 통보’를 전했다. 일각에서는 정권 교체 이후 전(前) 정부 정치색을 가진 기관장의 물갈이라는 의혹도 일었고, 이후 김 전 관장은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하지만 작품 자체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전시가 개막하자 미술평론가 임근준 씨는 미술관이 소장한 ‘여행용 가방’이 1941년 작인 시리즈A에 해당하는 에디션이 아니라 1950년대 중반에 제작된 시리즈 B로 추정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 이유로 “초기 버전이라면 가방끈이 달린 가죽 상자여야 하는데 단순 상자 형태이기 때문”이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에는 1945년에 프레데릭 키슬러가 잡지 ‘뷰’의 뒤샹 특집호를 위해 제작한 ‘3폭 접지’ 작업의 콜라주 미니어처도 포함돼 있으므로 아마도 1950년대 혹은 그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임 평론가는 뒤샹이 보낸 편지 등을 기록을 근거로 “뒤샹은 디럭스 에디션 20점 가운데 최초의 가방을 1940년 말경 파리에서 완성했고 1941년부터 에디션 연작의 주문판매를 시작했다”는 것과 “1942년 5월 뉴욕행 배편으로 프랑스를 떠나기 전까지 작가는 다섯 점을 추가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을 통해 미술관 소장품을 1941년 작으로 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미술관 측은 “1941년에 제작된 ‘시리즈 A’ 혹은 ‘시리즈 B’ 중에서도 1941년에 제작된 버전만의 특징인 69개의 아이템으로 구성됐다”면서 “특히 소장품에는 ‘큰 유리’에 들어가는 작업 중 하나인 반원형의 ‘글라이더’ 미니어처가 있지만 1942년작 이후부터는 없다”고 설명했다. 작품 출처에 대해서는 “뒤샹과 교류했던 디미트리 페트로프의 딸 누라가 소장한 것으로 지베르니미술관 전시 당시 도록에도 1941년작으로 소개됐다”며 “1945년 ‘뷰’ 매거진에 실렸던 ‘3폭접지’가 추가로 들어있는 이유도 페트로프가 당시 잡지 제작에 참여했기에 뒤샹이 그에게 이 작품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술관 측은 미술사가 프란시스 나우만이 “A시리즈의 디럭스 20개 외 변형본이거나 1941년에 제작된 B시리즈일 것”이라고 분석한 것을 토대로 “시리즈 A, B 중 어떤 것으로 구분되건 간에 1941년에 제작된 것 중 하나”임을 강조했다. 전시장에는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소장한 빨간 상자의 1966년 버전도 함께 전시 중이다. 4월7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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