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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서울도시건축박물관] 공간을 비우니 도시가 살아났다

  • 박윤선 기자
  • 2019-02-13 15:41:01
  • 정책·제도
[건축과 도시-서울도시건축박물관] 공간을 비우니 도시가 살아났다
덕수궁과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서울시의회 건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의 모습. 지면으로부터 3.2m에 불과한 낮은 높이로 오가는 이들에게 막힘없는 시야를 선사한다. /사진제공=이현준 작가

세종대로를 지나다 보면 서울시의회 건물과 덕수궁 사이로 이국적인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9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이다. 유럽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법한 주황색 지붕에 높은 첨탑, 아치형 입구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을 따랐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전통 기와지붕을 얹은 것이 보인다. 성당은 바로 옆으로 펼쳐진 덕수궁 돌담길, 키 큰 플라타너스들과 어우러져 서울만의 독특한 도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아름다운 건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종대로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성당과 세종대로 사이에 딱 성당 높이만 한 국세청 별관 건물이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국세청 별관을 허물고 나지막한 높이로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을 세우면서 풍경은 새롭게 바뀌었다. 이 툭 트인 시야를 위해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은 기존 건물의 8분의1 수준인 높이 3.2m의 낮고 납작한 건물로 설계됐다. 또 옥상에는 어떤 기둥이나 벽도 세우지 않았다. 안전상의 이유로 난간과 지하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를 놓기는 했지만 이 또한 철제 골조를 최소화하고 투명한 통유리로 짜 넣었다. 건축물을 세움으로써 오히려 바람과 시선이 오가는 ‘빈 공간’을 얻은 셈이다. 오는 3월 정식으로 문을 여는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을 미리 둘러봤다.

[건축과 도시-서울도시건축박물관] 공간을 비우니 도시가 살아났다
서울도시건축박물관 내부. 지하 3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박물관과 사무실 등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사진제공=이현준 작가

[건축과 도시-서울도시건축박물관] 공간을 비우니 도시가 살아났다
철거 전 국세청 남대문 별관의 모습. /사진제공=터미널7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사라진 길과 건물의 기억 새긴 ‘연대기’

3.2m 높이 옥상뒤로 기와지붕 얹은 성당

건물 처마높이 덕수궁 돌담 연장선과 맞춰

감춰진 역사의 파편들 건축으로 되살아나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은 광화문에서 시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심장부, 세종대로에 위치해 있다. 이 자리는 과거 조선의 ‘서학당(관립교육기관)길’과 대한제국의 신작로가 만났던 지점으로 일제강점기 체신부가 들어선 후 국세청 별관 건물이 세워져 오늘날에 이르렀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 국세청 별관 건물을 철거하고 세종대로의 역사성과 공공성을 고려한 건축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곧바로 국제현상공모가 진행됐고 20개국 80개 작품 가운데 조경찬 소장이 이끄는 ‘터미널7아키텍츠’의 ‘서울연대기(Seoul Chronicle)’가 최종 당선됐다.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은 곳곳에 역사의 흔적을 담았다.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공간은 옥상이다. 옥상이라고는 하지만 인도로부터의 높이가 3.2m에 불과하고 뒤쪽으로 물러설수록 경사가 낮아져 성당 주차장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작은 광장에 가깝다.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 구조물을 최소화한 이곳에는 녹슨 철근이 박힌 콘크리트 기둥 하나가 불쑥 솟아 있다. 국세청 건물을 지지하던 23개의 기둥 중 하나로 시공사 이름 등이 적혀 있어 특별히 남겨뒀다고 한다.

나머지 기둥들이 있던 자리는 과거 이곳에 건물이 없던 시절의 길 위치와 함께 옥상 바닥에 무늬로 표시돼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옥상이지만 앞에 높은 건물이 없는 덕에 서울시청사와 서울광장, 환구단이 있는 소공로 등 역사적인 공간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옥상이 평면으로 서울 연대기를 표현했다면 지하 3층 규모의 건물 내부는 수직을 적극 활용했다. 외부에서 보이는 건물의 높이는 덕수궁 돌담의 연장선에 맞췄다. 지하 1층은 국세청 남대문 별관의 지하층, 2층은 덕수궁 지하보도, 3층은 서울시청 시민청 높이에 상응한다. 각 지하층은 다양한 지하도와 연결돼 건너편 서울시청사와 지하철역은 물론 향후 지하보행로 개발이 예정된 광화문광장과도 연계될 예정이다.

조 소장은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인한 무분별한 개발은 서울의 기억을 지워왔다”며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의 디자인은 파편화된 역사적 순간들을 최소한의 건축적 장치를 통해 순서대로 나열해 역사적 층위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 공간이 사람들 각자의 ‘기억의 끈’이 이어지며 연결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건축과 도시-서울도시건축박물관] 공간을 비우니 도시가 살아났다
건너편에서 바라본 서울도시건축박물관 전경. /사진제공=이현준 작가

◇ 비우기 위한 건축…채우지 않은 공간

지하3층서 1층까지 툭 터버린 아트리움

도시의 소음에서 한발짝 물러선 아늑함

전시물 설치·프로젝터 영상 상영도 예정

이렇듯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은 빽빽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텅 비운 듯한 인상을 준다.

실제로 건물 내부로 들어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지하 3층부터 1층까지를 툭 터버린 거대한 ‘빈 공간(아트리움)’이다. 행인과 차량, 높은 건물로 꽉 차 있는 세종대로에서 막 들어왔기 때문에 이 빈 공간은 더욱 압도적으로 느껴진다.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던 고요함과 공간감을 주는 장소다. 총 3층으로 구성된 박물관 전시실에는 각각 테라스를 설치해 아무것도 없는 벽을 서로 다른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은 향후 이 벽에 전시물을 설치하거나 프로젝터로 영상을 상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두에 소개한 옥상 역시 광장으로 기획된 만큼 철저하게 비워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인도로부터 약 3m 높이의 단차로 거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시의 소음과 분주함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 아늑한 느낌이 있다.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을 설계한 조 소장은 비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도시를 비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워낸 공간은 없는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을 풍부하게 만드는 부분”이라며 “박물관으로 걸어 내려올 때, 각 층의 테라스에 올라갔을 때 모두 아트리움의 벽을 보게 된다”며 “한 방향을 바라봄으로써 각기 다른 시간 속에서 쌓인 기억을 통합하는 공간의 경험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옥상 광장에서 성당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난간으로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추후에라도 이곳을 연결하기 위해 대한성공회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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