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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서플라이 체인]"1만원 벌면 100원도 투자 안해"…어미새만 기다리는 부품사

<2>독자 생존 능력 잃은 공급 생태계

車부품사 R&D, 매출 1% 밑돌아…미래대비 무방비

전방산업 급변에 전속거래 끊기자 줄줄이 호흡곤란

"이종 경계 붕괴 가속…업체간 협업·구조조정 시급"





“매출 수백억원이 넘는 자동차 부품사도 자체 연구개발(R&D)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원청만 바라보죠.”

경남 창원에서 자동차 자동변속기에 들어가는 밸브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A사 사장은 한숨을 쉬었다. 역설적인 상황은 A사가 최근 현대차(005380)기아차(000270)의 파워트레인 다변화로 지난해 매출이 갑절로 뛰었다는 것. 지난해에는 채용공고를 내고 생산직 사원을 더 뽑기도 했다. A사 사장은 “면접 보러오는 사람을 보니 업황이 정말 어렵구나 했다”며 “(한국GM 군산이 폐쇄된) 전북은 물론 멀리 경기도에서도 여기에서 일하겠다고 찾아오더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우리도 5년이 한계이지 싶다”고 토로했다. 자율주행기능을 탑재한 전기차가 확대되면서 내연기관 변속기 시장이 줄어들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올해 미래 시장에 대비해 파워트레인 전문 계열사 현대파워텍과 다이모스를 합병해 현대트랜시스를 만들었다.



◇맨살 드러낸 공급망=한 곳의 원청과 거래하는 전속거래의 늪에서 벗어나자 주력산업의 공급생태계는 독자 생존할 수 없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원청의 주문만 믿고 R&D 능력을 키우지 않았던 부품업체들은 산업의 변화 흐름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975년 ‘계열화 촉진법’으로 시작한 대기업·협력업체의 전속거래는 우리 대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덩치를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협력업체들도 안정적인 납품물량을 확보하며 함께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갑질 논란과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전속거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데다 4차 산업혁명으로 업종 간 경계가 사라지자 전방 기업들은 변했다. 원청이 준 도면대로 납품하던 대여도 방식에서 콘셉트를 알려주고 자율적으로 부품을 만들어오라는 ‘승인도’ 또는 ‘시판품’ 형태로 납품 방식이 바뀌며 자체 R&D 역량을 키우지 못했던 기업들의 경쟁력이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글로벌 업황 변화에 원청 대기업이 사업구조를 바꾸며 날아든 유탄은 협력사에는 폭탄이 됐다. 포항에서 철강 후판의 녹을 제거하는 B 업체도 마찬가지다. 후판을 쓰는 조선업이 몇 년간 불황을 지속하면서 동국제강과 포스코 등이 후판공장의 문을 닫거나 물량을 줄였고 협력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B 업체의 한 관계자는 “동국제강이 후판공장 두 곳을 폐쇄하며 물량이 줄자 협력업체에서 400여명이 실업하기도 했다”며 “기술유출 우려로 대형사들과 전속계약 형태로 납품했는데 물량이 줄어드니 새 활로가 없다”고 말했다.



◇공급생태계도 극단적 양극화=원청에 얽매인 전속거래는 부품업체들을 온실 안 화초로 만들었다. 특히 심한 곳은 최근 2년간 산업변화에 급격히 침체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이다. 매출이 2,000억원에 육박하는 공조장치 납품업체인 C사는 최근 사업연도(2017년) 해외시장 개척 비용이 60만원에 불과하다. 몇 년째 적자를 기록하면서 납품처를 다변화할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 정부와 IBK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차 부품 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0.98%(2016년 기준). 1만원을 벌면 100원도 미래투자에 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2016년 3.5%이던 차 부품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완성차업체들의 이익이 낮아지면서 지난해 1.8%까지 줄어 미래 투자 역량이 더 떨어졌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C사의 한 관계자도 “회사가 솔직히 R&D로 신기술을 만들 여력이 없는 상태”라며 “솔직히 대기업도 미래 차 인력이 모자란데 이 인력이 중견기업에 오겠느냐”고 토로했다. 이러는 사이 부품업체 간에도 극단적인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한온시스템은 글로벌 납품처를 다양화한 데 이어 최근 글로벌 부품사 마그나의 사업부마저 인수했다. 한온시스템의 한 관계자는 “마그나를 인수하면서 전 세계 40개국에 있는 미래 차 인력 수천 명을 흡수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무한 경쟁’ 미래형 공급생태계 구축해야=부품사들이 전속거래를 더 원하는 퇴행현상도 퍼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전자·자동차·기계 등 200대 중견·중소기업에 설문한 결과 90%가 전속거래가 매출·수익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A사 사장도 “이자비용(영업이익의 약 3%)도 못 내는데 R&D를 할 처지가 아니다”라며 “어떻게든 원청이 다음 물량을 주게 매달리는 전략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최악은 부품사들의 무한경쟁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미래 차 물결로 자동차 원가에서 차지하는 전장부품의 비중이 50%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전자부품사들이 차량 전장산업에 대거 뛰어들고 있다. 산업연에 따르면 차 부품업은 신규 기업이 진입할 때 생산성(TFP)이 10% 가까이 줄어든다. 제조업의 허리가 휘청이면서 제조업 취업자(1월·17만명)가 줄고 실업률(4.5%)이 뛰며 고용상황이 악화하는데 산업 간 융합으로 충격은 더 커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부품업체들의 미래 역량을 키워 산업의 허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항구 산업연 선임연구위원은 “전 세계에서 기술력으로 무장한 업체들이 생겨나니 전속거래에만 의존하다 경쟁력을 잃은 업체들이 밀려 나가는 것”이라며 “선진국처럼 업종이 다른 부품사들을 모아서 시너지를 내는 메가 프로젝트를 하는 동시에 인수합병과 퇴출을 유도하는 구조조정을 병행해 미래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원·김해=구경우·박한신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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