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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끝낸 백흥암 영운 스님 "남 밟고 올라서려 않으면 더 나은 삶 살 수 있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

하루의 절반 참선에 매달려

타인 배려하는 마음만 가져도

세상의 갈등 많이 줄어들 것

백흥암 선원장 영운 스님 /사진제공=대한불교조계종




스님들이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참선수행에 몰두하는 일을 ‘안거(安居)’라고 일컫는다. 1년 중 겨울철 3개월(음력 10월 보름~이듬해 정월 보름·동안거)과 여름철 3개월(음력 4월 보름~7월 보름·하안거)을 승려들은 전국 선원에서 수행에 매진한다. 이번 동안거에는 전국 조계종 사찰 100곳에서 2,033명이 참여했으며, 정월대보름인 19일은 동안거가 끝나는 해제날이다.

동안거 해제날을 하루 앞두고 찾은 경북 영천 은해사의 암자 백흥암에서는 13명의 비구니스님이 막바지 수행에 정진하고 있었다. 산속 깊이 굽이굽이 올라 다다른 백흥암은 통일신라시대 보물 제790호 극락전과 보물 제486호 극락전 수미단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입구의 ‘수행도량이오니 출입을 금합니다’는 푯말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여전히 재래식 화장실을 쓰고 대형 솥이 남아있는 등 속세와 단절된 암자에는 고요하고 맑은 분위기가 흘렀다. 백흥암은 1년 중 부처님오신날에만 일반에 공개하는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이날 기자들의 방문 행사는 조계종 총무원의 거듭된 설득 끝에 어렵사리 성사됐다.

백흥암 입구에 있는 ‘수행도량이오니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적혀있는 푯말 /김현진 기자


동안거 해제를 하루 앞둔 18일 경북 영천 은해사 백흥암에서 비구니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불교조계종


백흥암에서 비구니스님들이 수행에 정진하고 있는 장소는 ‘번뇌를 단번에 자를 수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의 심검당(尋劍堂)이다. 비구니스님들은 지난 3개월간 매일 새벽 3시에 기상해 예불을 드리고 아침 공양 후 오전 7~10시, 점심 공양 후 오후 1시~4시 정진을 이어갔다. 오후 7~10시 저녁 정진까지 하루 꼬박 12시간을 수행에만 집중한 것이다. 24시간 중 절반의 시간을 수행에 매진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수행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이날 만난 백흥암 선원장 영운 스님은 “30여 년 전에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온 천지가 조용한 가운데 촛불 두 개만 놓고 하루 13~14시간씩 정진했다”며 “그때의 서슬 푸른 분위기는 아니지만 정진하는 스님들의 기운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요즘은 출가도 늦어지고 사람들도 다양해졌다”며 수행 시간을 줄인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지켜보면 언젠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동안거 해제를 하루 앞둔 18일 경북 영천 은해사 백흥암에서 비구니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불교조계




영운 스님은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배려와 참아야 한다는 인욕(忍辱)을 강조했다. 스님은 “타인을 조금만 배려하려는 마음만 가져도 갈등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남보다 잘나야 하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려 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인욕(忍辱)에 대해서는 “참는다는 것은 절실한 것”이라며 석남사 주지 시절 겪었던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같이 있던 스님이 다른 스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낸 적이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참으라고 했는데 화를 참지 못하고 소문을 낸 스님에게 굉장히 소리를 질렀어요. 백흥암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났습니다. 세 번 다시 생각해도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걸어 ‘참았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이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그러더라구요. 전화를 끊고 나서 너무 개운했습니다. 참는 것이 일단 중요하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두 번 세 번 생각해서 바로 잡아야 그 사람과의 관계가 유지됩니다.”

영운 스님은 18세였던 1964년 현묵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9년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1967년 해인사 홍제암에서 처음 동안거를 한 후 해인사, 석남사, 동화사, 백흥암 등에서 수행했다. 울산 석남사 주지를 역임하고 2004년부터 백흥암 선원장을 맡고 있다. 스님은 2013년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서’에서 “밥 한 발우(스님이 쓰는 밥그릇)가 피 한 발우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영운 스님은 “스님들은 시은(시주의 은혜)로 사는데, 그만큼 밥값을 하고 있는지 항상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라며 “밥 한 그릇이 있기까지 농사짓는 사람 등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이 있는데, 각자가 모든 것을 아낄 때에 복이 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천=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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