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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임직원 60%가 R&D 인력...차별화된 기술혁신만이 살길이죠"

●새 길 개척하는 퍼스트무버

대기업·외국계 회사 거쳐 34세때 창업

반도체 장비 국산화해 생산성 확 높여

IBM 등 해외기업에도 납품 '성공가도'

●스타트업 육성 전도사로

혁신은 성공경험 공유하는 것이 중요

청년기업가정신재단 등 잇따라 설립

벤처 생태계에 기업가정신 확산 주력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겸 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이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브이알빌딩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업가정신 고취를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경북 고령의 빈농 집안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상경한다. ‘무조건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고를 졸업하고 전문대를 다니다 대학에 편입한다. 부모님은 겨울에는 서울에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배추와 무를 팔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요즘 젊은이들 일각에서 얘기하는 ‘헬조선’의 전형적인 흙수저다.

다행히 1980년대 경제성장기 때 전자공학 분야 엔지니어로서 반도체 사업을 하던 대기업(당시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취직했다가 미국 반도체장비 회사 한국지사로 옮겨 서비스엔지니어(기술자)로 일한다. 하지만 두 회사를 다닐 때 기술 제안을 하고 특허 아이디어를 내도 “네가 뭘 안다고…”라는 핀잔을 거듭 듣는다.

그는 이때 미국 회사가 지사가 아닌 대리점 체제로 전환하자 34세에 창업의 길을 개척하게 된다. 1993년 반도체장비(HSG·D램용 캐패시티를 만드는 장비) 회사를 만들어 1999년 말 상장해 2000년 한때 주식 부호 3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표준화된 부품으로 공정을 혁신, 장비를 국산화하며 외국 제품보다 가격은 20~30%나 싸게 하면서도 생산성을 갑절로 높이고 메모리용량도 크게 키웠다. “패스트팔로어는 닦여진 길을 가면 되지만 퍼스트무버는 없는 길을 만들어야 해 리스크가 있지만 과실이 커 과감히 그 길을 갔다”는 게 자수성가한 그의 말이다.

나아가 ‘혁신은 성공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갖고 한국벤처기업협회에 이어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과 청년희망재단도 잇따라 만들어 벤처 생태계 육성에 나선다. 한국공학한림원 IP(지식재산권)전략연구회 위원장도 맡고 최근 다시 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바로 황철주(60·사진)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의 이야기다.

“이제는 지식과 정보와 기술이 빛의 속도로 공유돼 성장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혁신과 성공의 지도를 그리는 사람과 기업가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희망이 없으면 열정이나 도전도 없죠.” 황 대표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브이알빌딩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혁신·성공·희망을 공유하는 리더와 기업가정신을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리의 성장동력은 혁신하는 것밖에 없는데 혁신은 희망이 있어야만 어려운 환경을 인내하고 극복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현 경제 상황과 관련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기 위한 기술혁신이 일어나야 하는데 빨리 좇아가는 것이 습관화돼 혁신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일본·미국·유럽을 싸고 더 좋게 만드는 패스트팔로어 시대에서 벗어나 리스크가 크지만 과실도 큰 퍼스트무버 시대로 들어갈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대기업이나 미국 회사에서나 보조 역할밖에 못 했죠. 하지만 서비스엔지니어로서 국내 반도체 회사들에 납품할 때 기술지원을 하고 세계 기술 흐름을 보며 혼자 연구했어요. 사소한 것도 지나치지 않고 개선점을 찾았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명품이 될 수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좌절하게 된다. 할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특허를 내기 시작한 배경이다. 당시 핵심부품은 외국산을 썼지만 공정을 완전히 혁신해 국산화한 반도체장비를 개발하게 된다.

문제는 그의 제품을 알아주는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는 점이다. 1995년 초 대기업에 납품하려다 ‘조그만 회사와 거래하다 리스크가 생기면 어떻게 감당하느냐’며 퇴짜를 맞았다. 당시는 국산 나사 하나도 반도체장비에 쓰지 못하게 하던 때였다. 이때 ‘스타트업에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것을 절감했다. ‘어떻게 할까’ 곰곰이 고민하다 다른 미국 반도체장비 회사의 장비랑 합쳐 미국 회사 이름으로 삼성전자 양산라인에 넣어 테스트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마침 그 회사도 경쟁사에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던 터라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 전략이 적중해 그는 결국 대기업의 테스트를 통과해 신뢰를 얻게 된다. “미국 회사의 명성을 등에 업어 보증을 받은 셈이죠. 일단 대기업으로부터 신뢰를 얻자 ‘앞으로 한 달 뒤 이것보다 더 좋은 제품을 바로 이 현장에서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신제품이 더 좋아 그는 특별히 영업을 하지 않고도 여러 대기업에 납품하는 길을 뚫게 된다. 당시 스타트업으로서 쉽지 않았던 기술혁신을 하고 신뢰까지 얻어 대기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며 성공 가도에 들어선 것이다.



IMF 때는 주요 거래처 중 한 곳의 거래가 끊겨 수출을 통해 만회하려고 했는데 IBM이나 TI·필립스 등에 한두 대씩 파는 것으로 끝나 양산라인에 들어가기 힘들었다. “그때 외국 기업의 평가를 고려해 독일 키몬다와 장비 공정을 공동개발했죠. 키몬다 기술이 대만 반도체 업체에 팔리면서 이곳에 장비를 넣기 시작했으며 IBM에도 납품하고 그 얼라이언스 등으로 확대됐어요.”

1999년 12월에는 코스닥에 상장해 그다음 해에 한때 주식 부호 3위까지 오르며 주위의 부러움과 질시도 받는다. 2001년에는 LG디스플레이에도 장비를 넣기 시작해 6·7·8·11세대에 잇따라 납품한다. “액정표시장치(LCD) 장비는 패스트팔로어 분야라 중국이 금방 쫓아오지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는 퍼스트무버 쪽이라 LG랑 공동개발하는데 차세대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어요.”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몇 차례 심각한 위기가 닥쳐온다. 우선 2001년 국내 주요 거래처 중 한 곳과 거래가 끊긴 것이다. 이에 반도체장비 증착기술을 응용, 디스플레이장비를 개발해 2003년 LG디스플레이와 거래를 트며 다시 일어선다. 하지만 위기는 또 찾아와 신규 진출한 태양광장비 시장의 치킨게임에 휘말린다. “2003~2004년 태양광 결정질과 박막기술 둘을 갖고 했는데 2010년 태양광이 뜰 때는 매출이 연간 4,234억원으로 급증했다가 이후 중국 업체들이 가세하며 세계적으로 과당경쟁이 빚어져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산업의 원천기술인 반도체 기술이 있어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디스플레이나 빛을 전기로 바꾸는 태양광이나 원리가 비슷하기는 한데 치킨게임 앞에서는 해볼 재간이 없었죠.” 매출이 2012년 768억원을 기록하며 최저점까지 추락했다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2,600억~2,700억원까지 회복세를 보였다. 그는 반도체 원천 기반 기술을 갖고 있고 디스플레이 기술도 혁신 중이며 태양광 기술도 유럽하고 협력하고 있는데다 올해부터 고효율 태양광도 시작해 연내 결실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현재 매출은 내수와 대만·일본·미국·유럽·중국으로의 수출이 반반이며 총 500여명의 임직원 중 300여명이 연구개발(R&D) 인력이다. 차별화된 기술혁신만이 살길이라는 게 황 대표의 지론이다.

그는 “연구원도 학력이 중요한 게 아니고 몰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모방은 학식이 높으면 빨라지지만 1·2·3차 산업혁명의 주역인 제임스 와트, 토머스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 정보통신기술(ICT) 엔지니어들을 봐도 혁신하느냐가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부침을 겪으며 자신의 경험을 벤처·스타트업과 공유하기로 했다. “벤처의 경우 한때 모럴해저드가 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술혁신이 정체돼 벤처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여론도 많았고요.” 그가 지난 1995년 이민화·장흥순·조현정씨 등과 한국벤처기업협회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대 말에 대두된 ‘벤처 무용론’을 극복하기 위해 2010년부터 2년간 벤처기업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기업인 중 정주영 회장을 가장 존경하는데요, 지금의 대기업 1세대는 전쟁의 참화에서도 산업을 일으켰죠. 그동안 패스트팔로어 전략과 정부가 시장을 조성해주며 많이 성장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경제의 틀이 완전히 바뀌고 있어 벤처·스타트업에 기업가정신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혁신을 추구하고 고부가가치화해야 혁신성장을 할 수 있잖아요.”

2010년에는 청년기업가재단, 2015년에는 청년희망재단을 출범시켜 각각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청년기업가재단을 만들 때 벤처의 필요성과 혁신의 가치를 정부에 설명해 제 돈 20억원에, 정부가 기업은행·KT·하나은행 등에 얘기하고 다산네트웍스도 참여해 총 110억원으로 출범했습니다.” 그는 이어 “스타트업과 청년의 기업가정신을 고양시키고 정부도 규제 완화와 시장 조성에 나서야 혁신성장에 성공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1959년 경북 고령 △1986년 인하대 공대 졸업·2004년 명예공학박사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2010~2012년 벤처기업협회장 △2010~2015년 청년기업가정신재단 초대 이사장 △2012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2015~2016년 청년희망재단 초대 이사장 △2018년~ 공학한림원 IP전략연구회 위원장, 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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