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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페리 제독 日 개항의 숨은목적

페리 제독




‘모비 딕’과 석탄, 은(銀)…일본 개항. 전자는 원인이고 후자는 결과다. 둘을 묶은 매개는 미국. 매슈 페리 제독을 내세운 미국의 아시아 진출 욕구가 일본 개항으로 이어졌다. ‘백경(白鯨)’으로도 번역되는 ‘모비 딕’은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이 1851년 발표한 해양소설로 고래를 향한 인간의 집념과 복수심을 생생하게 담았다. ‘모비 딕’ 출간과 일본 개항 시기가 비슷하다.

개항 이전부터 일본 해안에는 미국 포경선들이 적지 않게 찾아들었다. 멕시코와의 전쟁(1846~1848년)에서 승리해 거대한 영토를 획득한 뒤 미국은 태평양에도 포경선을 대거 풀었다. 당시 포경업은 최초의 해양 글로벌 산업. 고래기름은 등불로 인기가 높았다. 산업혁명 확산으로 늘어난 거대한 생산설비에 들어가는 윤활유도 고래에서 짜냈다. 유연하고 강한 수염도 최고급 의복 자재나 장식재로 쓰였다. 각국의 경쟁 속에 선두는 긴 해안선과 풍부한 어장을 지닌 미국. 세계 포경선의 절반 이상을 갖고 있었다.

일자리 상실에 대한 우려도 미국 포경업을 더욱 키웠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가 1849년 이후 급격히 꺾이며 발생한 유휴 노동력을 포경업이 떠안았다. 수요가 그만큼 많았다. 태평양 연안은 물론 베링해와 오호츠크해·동해까지 고래를 찾아 나선 포경선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온다. ‘이양선이 혹 뭍에 내려 물을 긷기도 하고 고래를 잡기도 하는데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다(헌종실록 15권).’ 독도를 발견한 최초의 서양 선박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리앙쿠르호 역시 포경선이었다.



동해에 접한 일본의 해안에 난파한 미국 포경선을 접한 일본인들은 크게 놀랐다. ‘고기는 다 버리고 기름과 수염만 뽑다니!’ 고래 한 마리를 잡으면 7개 마을이 나눠 먹는다는 일본인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국 포경선단과 대중국 무역선단에 물과 석탄을 보급하기 위한 중간 기착지를 열겠다며 페리가 이끄는 미국 함대가 찾아온 것이다. 페리함대는 최단거리인 태평양이 아니라 대서양과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거쳐 말라카해협을 지나 일본에 닿았다. 태평양에는 마땅한 보급기지가 없었던 탓이다.

은의 가치를 높게 쳐주는 중국에 일본산 은을 팔고 판매대금을 금으로 받아 서구에 팔면 거뜬히 2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도 개항 요구의 원인이었다. 미국 해군 증기선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페리 제독은 일본 개항 4년 뒤인 1858년 3월4일 64세로 눈을 감았으나 그가 역사에 남긴 흔적은 아직도 짙다. 일본은 논외로 치더라도 벨몽 가문, 밴더빌트 가문과의 혼인을 통한 결합으로 금융계에 후손이 많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으로 재임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대북 선제공격론을 펼친 윌리엄 제임스 페리도 페리 가문의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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