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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믿는 이주노동자에 돼지도축 맡기는 현실...야근수당·퇴직금 없다 속이는 사장도

[그들이 사는 세상] 이주노동자

야근수당 요구하자 사장 "너도 알거 다 알게 됐구나"

본국 돌아간 이주노동자의 문제 해결 방법 無

세상을 바꾸는 건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강서 PC방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대중들의 공분이 심신미약에 따른 감경 조항을 의무에서 선택으로 바꿨습니다. 직장 내 ‘을’이 목소리를 내 갑질을 제보하면서 직장 내 갑질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소모뚜(오른쪽에서 네번째) 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운영위원장이 지난 2월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과도한 단속을 비판하고 있다./사진제공=소모뚜




불교에서 제1의 원칙이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는다’에요. 이 원칙을 독실하게 믿고 지켰던 미얀마 친구가 한국에 와서 한 일이 돼지 도축이었어요. 믿음과 생계 사이에서 고민하던 친구는 농장을 이탈했고 결국 본국으로 송환됐어요.”

소모뚜 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운영위원장은 최근 과천 법무부 앞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이같은 사연을 전했다. 그는 대학을 나와도, 기술이 있어도, 전에 일을 한 경험이 있어도 한국에 오면 모두 ‘0’이 된다고 했다. 잡히는 대로 일을 하다가 다양한 이유로 일하는 곳에서 도망치면 ‘미등록 체류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법무부 단속에 걸리면 바로 본국으로 송환된다. 단속을 피해 도망치다 사망하는 이주 노동자들도 있다. 이날은 소모뚜 위원장이 법무부에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하러 간 날이었다.

소모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한국도 과거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에 가서 일한 경험이 있는 나라로 우리의 아픔을 모를 수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안타깝다”며 고개를 저었다.

소모뚜(왼쪽) 위원장이 지난해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소모뚜


소모뚜 위원장을 노동자에서 시민활동가로 변화시킨 것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의 현실이었다. 그가 미얀마에서 한국에 온 게 지난 1995년, 벌써 24년이 지났다. 한국에 와서 얻은 첫 일자리는 상자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주말, 휴일에 쉬지도 않고 매일 새벽 1, 2시까지 일하는 날들이 많았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다 같이 사우나 갔다가 해장국 먹고 다시 일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일해서 받은 돈은 월 70만원. 같이 일했던 한국인 직원과 월급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 당연히 받아야 할 야근 수당도 받지 못했다.

“한국 사장한테 야근 수당 달라고 하자 사장이 처음 하는 말이 ‘이제 너도 알 거 다 알게 됐구나’였어요. 야근수당도 다 정해진 기준이 있을 텐데 오히려 저한테 얼마 받을 거냐고 묻더라고요. 결국 제가 받은 야근수당은 시간당 계산하면 기본급보다 더 적은 수준이었죠”



미얀마에서 공과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던 그였지만 한국에서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것도 서운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더 서운한 건 이주 노동자라는 이유로 한국인과 다르게 처우하는 점이었다. 올해 최저임금이 올랐는데 이주노동자에게는 작년도 최저임금 기준으로 월급을 주는 사장님, 야근수당·퇴직금은 없다고 얘기하는 사장님이 많았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남은 월급과 퇴직금을 계산해 주겠다고 한 뒤 절반도 안되는 금액만 주는 경우도 주변에 숱하게 있었다. 소모뚜 위원장은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관이나 단체들이 있지만 한국에서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쁘다”며 “이미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셈”이라며 분통 터뜨렸다.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된 밴드 ‘스톱 크랙다운’의 활동 모습/사진제공=소모뚜


한국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노래로 풀어내려고 이주노동자들을 모아 밴드 ‘스톱 크랙다운’을 결성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멤버 중에 미등록 체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대 내려가면 법무부 직원이 있어서 멤버를 잡아가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며 “결국 그 멤버는 네팔로 강제 송환됐다”고 언급했다.

소모뚜 위원장이 바라는 것은 하나다. 한국인의 인권만큼 이주노동자의 인권도 지켜달라는 것.

“IMF 때 한국인 사장님과 함께 고생했고 2002년 월드컵 때는 한국을 응원했어요. 이주노동자는 한국인이 하기 싫어하거나 힘든 일을 하는 만큼 한국인의 일자리를 뺏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이에요”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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