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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정치]北 '핵과 빵' 두 토끼 잡은 파키스탄 모델 노리나

최선희, 北 '빅딜' 요구 거부하며 '협상 판 깰 수 있다' 벼랑 끝 전술

'단계적 동시행동' 관철하며 핵 보유하고 제재 해제도 노리는 듯

태영호 "北은 파키스탄 핵 보유 과정에서 교훈 얻었다"

파키스탄, 98년 핵실험해 제재 받았지만 아프간 전쟁으로 3년 만에 해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5일 북미 대화 중단을 시사하면서 북한이 ‘핵과 빵(제재 해제 및 경제적 보상)’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파키스탄 모델’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우선 최 부상의 긴급 기자회견 의도는 미국의 ‘빅딜’ 요구에 맞서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동시행동’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미국의 ‘빅딜’ 요구란 북한이 모든 ‘핵 리스트’를 신고하고 이에 따른 비핵화 로드맵을 제출하면 미국이 화끈한 제재 완화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일단 북한의 전체 핵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어야 이에 걸맞은 상응조치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해줄 수 있을지 계획을 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이 같은 빅딜을 요구했는데, 최 부상은 이날 “미국이 지나치게 많은 요구를 했다”며 빅딜 요구를 재차 거부했습니다.

조선중앙TV가 지난 6일 공개한 북미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북미 정상의 모습. /연합뉴스


반면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 동시행동’은 ‘핵 리스트’ 신고는 하지 않고 특정 비핵화 조치 하나하나에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방식입니다. 물론 북한은 ‘핵 리스트 신고는 미국에 공격좌표를 찍어주는 것’이라며 신뢰관계가 쌓이면 하겠다는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전체 핵 능력을 숨긴 채 그동안 노출된 시설만 내놓으면서 굵직한 상응 조치를 받아내는 것을 노리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의 대가로 유엔 제재 11건 중 5건의 해제를 요구한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전문가들은 영변 핵시설은 수십 년 전 이미 미국에 노출된 것으로, 북한 전역에 영변 외의 숨겨진 핵시설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이 요구한 제재 해제 목록은 원유 수입 등 사실상 대북제재의 핵심사안이라고 봅니다. 이로 미뤄봤을 때 북한 내 숨겨진 핵시설, 65~70개로 추정되는 핵탄두는 그대로 둔 채 제재는 대폭 푸는 것을 북한이 노린 것이라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이에 대해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최근 칼럼에서 “북한은 아마 다음 번에는 미공개 농축우라늄 시설을 내놓을 테니 한미 동맹을 해체하라고 했을 것”이라며 “북한은 말로는 비핵화 협상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핵보유 협상을 하려 했다”고 진단했다.

조선중앙TV가 지난 6일 공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하노이 북한 대사관 격려 방문의 모습. 김 위원장이 대사관 직원의 딸로 보이는 여아의 볼에 입을 맞추자 환영나온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묵시적으로 핵 보유국으로 인정은 받는 반면 제재가 해제된 파키스탄 모델을 노리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이 핵보유국이 되자 인도도 1974년 핵실험을 하며 핵 보유국을 선언합니다. 이에 파키스탄은 1998년 총 6번의 핵실험으로 덩달아 핵 보유국을 선언합니다. 당연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파키스탄에 제재를 단행합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는 3년 만에 풀립니다. 냉전 시대 미국의 우방이었던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 중 미군의 배후기지 역할을 톡톡히 했고 이에 힘입어 제재 해제를 받아냈습니다. 결국 파키스탄은 핵도 손에 쥐고 제재 해제도 받아드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 것입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모습. /연합뉴스


북한 사정에 밝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역시 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지난달 26일 한 강연회에서 “김정은은 핵을 포기 안 한다”며 “핵 보유국 지위를 굳히며 남북 경제협력으로 난관을 벗어나려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는 “북한은 파키스탄의 핵 보유 과정에서 교훈을 얻었다”며 “1998년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하고 핵 보유를 선언했을 때 미국은 ‘파키스탄을 신석기 시대로 돌아가게 하겠다’며 제재를 공언했지만, 파키스탄은 ‘우리의 핵을 없애려면 인도의 핵도 없애달라’며 3년 동안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시간을 끌었고,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파키스탄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에 돌입했다”고 진단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은 이 사건을 보면서 두 가지를 배웠다”며 “첫째, 명분을 잘 내세우면 (핵 보유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구할 수 있다는 것과 둘째,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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