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8일 서울 종로구의 청계광장.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각국에서 날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광장 한복판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들은 ‘박찬일 셰프와 함께 하는 노포(老鋪) 이야기’의 체험단으로 뽑힌 여행객들이었다. 총 15명의 체험단은 이날 박찬일 셰프의 안내를 따라 서울 시내의 대표적인 노포인 청진옥·열차집·조선옥을 차례로 방문해 4시간 동안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가득한 미식 기행을 즐겼다.
콜롬비아 출신의 로라 티아티노(19)씨는 “한국 여행을 계획하던 중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오래된 맛집을 테마로 한 관광상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식당의 역사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요리를 접하니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일본에서 온 시오자와 하루나(34)씨는 “식당을 세 곳이나 가다 보니 맛 좋은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게 아쉬울 따름”이라며 “음식과 함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뛰어난 맛과 손님을 향한 정성으로 오랜 세월 맛집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식당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노포’와 ‘여행’을 결합한 관광 상품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사랑을 받은 식당들은 맛에 관한 한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만큼 관광객들이 별다른 수고를 들이지 않고 검증된 장소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노포 기행’은 앞으로도 꾸준한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박찬일 셰프와 함께 하는 노포 이야기’를 기획한 한국방문위원회는 쇼핑 축제인 ‘코리아그랜드세일’ 기간(1월17일~2월28일)에 서울의 대표 노포 5곳(청진옥·하동관·열차집·우래옥·조선옥)의 역사와 메뉴에 대한 설명을 담은 책자를 관광객들에게 배포했다. 다섯 군데의 식당 중에서 2곳 이상을 방문한 뒤 인증샷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관광객에게는 기념상품을 증정하기도 했다. 한국방문위원회 관계자는 “노포 이야기에 참여할 체험단 15명을 뽑기 위해 사전 공고를 냈는데 무려 35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며 “SNS 활동 빈도와 영향력 등을 고려해 체험단을 최종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노포 기행 행사를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확대한 덕분에 박찬일 요리사가 쓴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는 출간 이후 두 달가량이 지난 현재까지 국내 4대 서점의 여행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여행객을 유치하는 방편으로 미식 기행 상품개발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남부 지방을 대표하는 관광지인 부산은 지난해에만 6월과 9월, 10월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식도락 여행을 선보였다. 이 상품을 구매한 고객은 1박 2일 동안 유명 맛 칼럼니스트인 박상현씨와 동행하며 해운대 양산국밥, 남포동 삼송초밥 등 유서 깊은 지역 식당을 둘러봤다. 부산관광공사 관계자는 “노포 기행 상품에 대한 관광객들의 반응이 워낙 좋아 올해도 비슷한 콘셉트의 행사를 기획 중”이라고 말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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