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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세편살]"지갑으로 키운 내 새끼"…90년생의 팬질은 어떻게 다를까

■복세편살(복잡한 세대 편견없이 살펴보자)

<3> 프로듀스101로 살펴본 90년생의 팬덤 문화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

무려 101명의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피라미드 대열로 나란히 줄을 서 군무를 추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번째 시즌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국민 투표를 통해 데뷔할 아이돌을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이야기입니다. 4번째 시즌인 ‘프로듀스엑스 101’은 방송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벌써 반응이 뜨겁습니다. 타이틀곡 ‘_지마’의 무대영상이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가 하면 이미 출연진의 팬덤이 형성되기까지 했죠. 온라인상에서는 누가 첫 ‘센터(1위)’를 차지할 것인지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실 프로듀스101 시리즈는 방송계의 ‘마스터키’라고 불릴 정도로 흥행이 보장된 프로그램입니다. 이전 시리즈들은 모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실제 데뷔한 아이돌 그룹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논란을 불러온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춤과 노래 실력, 외모에 따라 A~F등급으로 나누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과도한 서열화와 경쟁심을 부추긴다는 비판부터 순위 선정 방식의 잔인함, 인권 등을 무시한 ‘악마의 편집’ 논란까지 갑론을박이 뜨겁게 이어졌죠.

2016년 1월 첫 선을 보였던 프로듀스101(왼쪽)은 지나친 경쟁과 악마의 편집 등으로 각종 논란을 빚었지만 벌써 4번째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새 시즌 ‘프로듀스엑스 101’은 방송을 하기도 전부터 타이틀곡(오른쪽)이 인기를 얻고 있네요. /제공=CJE&M




하지만 논란에도 불구하고 4번째 시즌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합니다. 결국 프로듀스101이 ‘요즘 세대의 팬덤 문화’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는 의미겠죠.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프로듀스101이 “달라지기 시작한 팬덤의 욕망을 정확히 짚었다”고 평가합니다. 대체 어떤 욕망일까요. 김 평론가는 “(요즘 팬덤에는) 예전과는 달리 직접 참여하고, 만들어가며, 성취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국민이 직접 투표를 통해 아이돌 그룹 멤버를 선발한다는 프로그램의 형식이 바로 이 같은 ‘참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거죠.

사실 이런 ‘참여’에 대한 욕구는 반드시 ‘아이돌 스타’와 ‘팬’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품질 좋은 신제품이 전방위적으로 쏟아지는 지금의 시대, 새로운 제품 혹은 새로운 브랜드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팬덤’이죠. 성능이 좋고 훌륭한 제품은 너무나도 많기에 특별히 사랑받지 못한다면 팔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의 팬덤 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90년대생들은 어떤 스타에 빠져들고 어떻게 사랑할까요. 80년대생들과 비교해 90년생들의 팬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세히 들여다 봤습니다.

■사진을 샀던 3040 VS 사진을 ‘생산’하는 1020



80년생들의 팬덤 문화를 잘 그렸다고 호평받은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장면입니다. 오빠에 죽고 오빠에 살던 팬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냈었죠. 지금도 팬들은 ‘오빠에 죽고 오빠에 살지’만 행태는 사뭇 다릅니다. /제공=CJ E&M


어느 시대에나 ‘팬덤’은 있었다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역시 1990년 후반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당시의 팬덤은 지금과 사뭇 달랐죠. 소위 ‘조상’ 아이돌로 꼽히는 H.O.T의 팬이었던 신모(38)씨는 당시의 ‘덕질’에 대해 “아이돌의 사진이나 앨범, 지금으로 치면 소위 ‘굿즈’라는 것을 모으기 위해 열심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합니다.

“학교 앞 음반가게나 서점에서 아이돌 관련한 사은품을 주거나 문방구에서 아이돌 사진을 인화해놓은 것을 팔면 줄을 서서 사곤 했어요. 어쨌든 ‘희귀한’ 사진을 많이 모으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같은 그룹을 좋아해도 ‘최애’ 멤버는 달랐던 친구랑 사진을 교환하는 일도 많았어요.”

사랑하는 스타의 ‘희귀한’ 사진을 원하는 마음은 90년대생 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줄을 서서 내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기 보다는 희귀한 사진을 ‘직접’ 생산하기를 택했습니다. 값비싼 망원렌즈 등을 동원해 ‘고퀼’의 ‘직찍’을 생산하고 팬들끼리 공유합니다. 아니, 팬들끼리 나눠갖는 것을 넘어 팬이 아닌 사람들을 ‘영업’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촬영의 대상이 된 ‘스타’에게 선물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죠.

한 팬이 개인 SNS에 올린 아이돌 컵홀더 인증샷입니다. 팬들은 오직 아이돌 컵홀더를 갖기 위해서 카페를 방문하기도 하죠.


즉, 90년생들의 ‘덕질’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출연하는 방송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앞서 팬이 아닌 사람도 감탄할 만한 질좋은 사진을 예로 들었지만 ‘덕질’과 ‘영업’의 수준은 사실 이 정도가 아닙니다. 돈을 모아 스타의 이름으로 사회단체에 기부하거나 연예인 이름으로 헌혈도 합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하철에 생일 광고를 걸고 일회용 컵홀더 등을 제작해 유명 커피숍 등에 돌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돌을 성공하게 도와줄 방송 스태프와 기자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감사 메일을 쓰는 일도 마다치 않죠. 이제는 스타의 이미지를 직접 키워내고 홍보하는 시대가 온 겁니다.

김헌식 평론가는 이러한 팬문화의 변화를 두고 ‘아이돌이 아이들로 돌아왔다’고 표현했습니다. 과거 아이돌이 사진적 의미의 ‘우상(Idol)’이자 ‘우리와는 다른 우월한 존재’로 신격화됐다면 이제는 ‘나와 동일한’ 존재로 변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팬들은 “저들이 성공하는 것이 곧 나의 성공이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아이돌의 성공을 통해 직접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90년생의 덕질이란 결국 일종의 ‘자기 표현’이자 ‘타인과 공유하려는 욕구’의 발현이라는 거죠.

■“손 닿지 않는 스타” VS “지갑으로 키운 내 새끼”

스타를 대하는 태도도 사뭇 다릅니다. 80년대생들의 팬문화가 ‘손 닿지 않는 오빠’를 뒤쫓는 ‘빠순이’로 통칭된다면 90년대생들의 팬덤은 ‘지갑으로 키운 내 새끼’라는 말로 압축됩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투표를 하면 추첨을 통해 명품백을 보내겠다”며 독려해 화제가 됐던 한 팬의 트위터입니다. )




실제 보이그룹 워너원을 배출한 프로듀스101 시즌2가 방영되던 시기 출연자 권현빈의 팬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잔고가 93억원인 통장을 ‘인증’하며 투표를 도와줄 경우 명품백을 주겠다고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명품백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선물을 주변에 나누며 ‘내 스타’를 키우려는 시도는 자주 보입니다. 워너원의 팬이었던 이모(23)씨 역시 “열성 팬들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보면 누구에 투표해주면 초코우유를 사주겠다, 이모티콘을 쏘겠다는 글이 자주 보였다”고 기억합니다.

‘스타를 키우는’ 90년생들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문화가 바로 이른바 ‘조공 문화’일 겁니다. 과거 스타에서 손편지를 쓰고 종이학 선물을 접어보내던 때랑 뭐가 다르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조공’으로 보내는 상품의 가격이나 규모는 말그대로 천차만별입니다. 좋아하는 스타의 생일을 맞아 팬클럽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금해 명품 가방이나 신발·노트북 등 고가품을 보내는 것이 보통이고 지하철 광고판이나 버스에 생일 축하 광고를 싣는 것도 평범해졌습니다. 무엇을 선물로 보내느냐의 수준을 넘어 목적도 좀 달라진 듯 보입니다. 80년생이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선물을 보냈다면 90년생은 ‘내 스타’가 다른 아이돌보다 더 멋있고 더 폼나게 보일 수 있게, 가시밭길이 아니라 ‘꽃길’만 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빠는 내 삶의 전부” VS “오빠보다 중요한 나”

90년생의 팬덤 문화가 가장 특별한 지점은 외형이 아닌 내부에 있다고 봅니다. 조금 이상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90년생의 팬덤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사실 ‘스타(아이돌)’이 아니라 바로 ‘팬(나·개인)’입니다. 즉 팬 개인의 기호가 스타의 성향보다 더 중요해진 것입니다.

4년간 총 3명의 아이돌을 좋아했다는 전모(26)씨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4명의 아이돌을 좇으며 안 해본 ‘덕질’이 없다는 전씨지만 이제는 전부 ‘탈덕(덕질을 관두는 것)’한 상태라고 합니다. 전씨는 “사실 덕질의 대상인 아이돌이 좋다기보다는 덕질 자체가 재미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어 “페이스북 등 SNS가 발달하며 마음만 먹으면 덕질메이트(덕메)를 많이 사귈 수 있는데 그들과 사진전이나 영상회 등을 쫓아다니고 친목을 다지는 게 너무 즐거웠었다”며 “돌이켜보면 어떤 아이돌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전씨에 따르면 실제로 많은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던 아이돌이 본인의 기호와 맞지 않는다는 실망감을 느꼈을 때 ‘탈덕’하거나 또 괜찮아보이는 아이돌을 발견했을 때 ‘입덕(덕질을 시작하는 것)’하는 일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번 오빠는 영원한 오빠’라던 80년생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죠.

‘덕질’이 일종의 취미생활이자 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된 상황은 ‘네임드 홈마’라는 직군(?)의 등장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홈마’는 홈페이지 마스터의 줄임말인데요, 일명 ‘대포 카메라’로 불리는 고화질 카메라로 아이돌의 고퀼 사진을 찍어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네임드(named) 홈마라고 하면 이중에서도 팬들, 때로는 스타의 인정까지 받는 유명한 홈마죠. 최근 초중고생 사이에서는 장래희망이 ‘네임드 홈마’라고 하는 친구들도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전씨는 “네임드 홈마가 되면 아이돌과 다른 팬들에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모두들 네임드 홈마가 되기를 꿈꾼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욕망의 기저에는 아이돌 자체를 향한 애정도 물론 있겠지만 내 취미생활에 대해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하는 욕구도 분명히 깔려 있겠죠.

■‘슈퍼 스타’를 키워라 VS ‘팬’을 잡아라

지금의 문화산업에서 ‘스타’보다 ‘팬’이 중요해진 것은 결국 희소성이라는 지점과도 맞닿아 있는듯 보입니다. 성공하고 싶은 아이돌(플레이어)는 많지만 그들을 위해 지갑을 열어줄 팬들이 도리어 그렇게 많지는 않은거죠. 80년생 팬인 신씨는 “예전에는 아이돌이 지금만큼 많지 않았고 채널도 많이 없었기에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만 좋아했다”며 “하지만 요즘은 매체도 너무 많고 아이돌도 너무 많으니 오히려 프로듀스101처럼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키우고, 홍보하고, 그런 부분에서 더 큰 흥미와 보람을 느끼는 듯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예전에는 지역마다 있는 팬클럽이 굉장히 중요했기에 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됐다”며 “하지만 지금은 SNS가 발달한만큼 폐쇄적 커뮤니티가 아니더라도 일반인의 영업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더 인기있게 만들 수 있으니 그런 ‘영업’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듯 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이런 경향은 비단 아이돌 산업 분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대중문화 전반은 물론 대부분의 소비재와 마케팅 영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나타나죠. 김헌식 평론가는 “영화만 보더라도 소위 말하는 ‘티켓 파워’라는 게 많이 사라졌다”며 “예전에는 인기 있는 배우를 쓰면 흥행이 보자오댔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경우 바로 채널을 돌려버린다”고 설명합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기호를 중심으로 문화와 산업을 접하고 소비한다”는 게 설명의 요지죠.

아이폰과 갤럭시만 보더라도 이제 판매를 좌우하는 요소가 기능과 성능의 문제라기보다는 팬덤의 차이에서 비롯된 일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확실히 팬들은 이전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덕질’을 하고 있습니다. 김 평론가는 이러한 현상이 팬들과 아이돌이 서로 ‘윈윈’하는 변화라고 말합니다. 김 평론가는 “연예인들이 자기가 어떤 작품이나 행위를 하더라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철저히 대중, 마니아, 덕질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비스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마냥 이 변화를 기분 좋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팬이 아이돌을 고르는’ 상황이 되버린 지금 아이돌은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잃고 대중들이 선호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중입니다. “팬이 돈을 내서 아이돌이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으니 팬의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해”라는 사고방식의 팬덤도 적지 않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의 아이돌도 팬들의 만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평소 성격을 드러내다가는 비판받기 쉬워 애써 웃음을 짓곤 하는데 이를 두고 ‘자본주의적 미소’라는 우스개도 나온답니다.

꼬리(팬)에 몸통(스타)이 휘둘려서야 문화콘텐츠산업의 본질인 작품의 내용과 질을 챙길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예컨대 국내 뮤지컬 시장의 경우 일명 ‘회전문 관객’으로 불리는 팬들의 지지 아래 수년 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는 등 고속 성장해 왔지만 이제는 팬덤이 너무 커져 캐스팅이나 작품 구성 모두에서 골수팬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 ‘이대로 괜찮나’는 자성의 목소리까지 나오는 모습이죠. 팬덤의 본질이 깊은 애정에서 비롯되는 만큼 팬의 미움을 살 경우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위험도 크죠. 최근 ‘승리’ 사태로 인해 YG의 제국이 흔들리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능동적인 팬 문화와 소비 문화로의 변화는 분명 반가운 입니다. 하지만 팬덤을 무기로 스타를 휘두르려는 팬이나 팬덤을 활용해 손쉽게 부를 쌓으려는 산업계나 양쪽 모두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을 지킬 필요는 있어보입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신화 인턴기자 hbshin120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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