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통상업무 담당 시절, 워싱턴에 갈 때마다 미식축구팀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최근 전력을 훑고 갔다고 한다. 미국 슈퍼볼 우승팀의 쿼터백과 미국 대통령을 동시에 배출한 대학이 어디인지를 놓고 미국 파트너들과 환담도 나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으로 미 정치인·관료들을 대한다.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9세부터 외국 생활을 한 그에게는 한국의 문화가 오히려 낯설 수 있다.
워싱턴을 찾을 때마다 미 상원과 하원을 누비는 김 차장의 스타일을 두고 한 정부 인사는 “다소 뻔뻔해 보일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존에 한국의 통상 관료들이 미 상무부나 무역대표부(USTR) 정도만 만나고 돌아왔다면 김 차장은 게리 콘 전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 백악관 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 인사로 꼽혔다. 그만큼 워싱턴의 생각을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차관급인 안보실 2차장 자리에 장관급(통상교섭본부장)을 불러들인 것은 그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미국 조야의 한미 갈등설에 줄곧 시달려왔다. 하노이회담의 실패 가능성을 청와대가 예측하지 못한 것도 문 대통령의 중재자 위상에 상처를 줬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워싱턴의 강타자들을 요리할 구원투수가 절실했을 수 있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꽉 막힌 비핵화 협상의 활로를 찾기 위한 한미정상회담이 11일 열린다. 대북제재의 키를 쥔 미국과의 완벽한 공조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도 메아리로 맴돌 뿐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신뢰를 회복하고 북한에는 어설픈 비핵화를 포기하게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참모들의 의중을 정확히 짚어내고 감성적 접근보다는 현실적인 길을 제시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김 차장 앞에 놓여 있다. 그의 저서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도 언급됐듯이 국제 관계는 냉혹하리만큼 비정하고 호소한다고 약자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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