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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지순한 지젤처럼…"발레 사랑에 이유 있나요"

<국립발레단 퇴단 앞둔 발레리나 김지영>

6월 '지젤'이 마지막 공연

강단서 제2 발레 인생 도전

그리움 남기는 무용수 꿈꿔

무대 완전히 떠나진 않을 것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국립발레단 퇴단을 앞두고 26일 예술의전당에서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제공=예술의전당




“사랑하는 데 이유가 있나요. 정말 사랑하면 이유가 없습니다”

20년만에 국립발레단에서 퇴단하는 발레리나 김지영(41)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는데 왜 그렇게 발레가 좋았느냐’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만감이 교차하는 듯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1997년 입단해 수석무용수로 활약한 그는 조만간 경희대학교 교수로 부임한다. 오는 6월 22∼2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낭만 발레 ‘지젤’이 퇴단 공연이다. 이후 갈라 등이 예정돼 있지만 대형공연장에서 펼치는 전막 공연은 사실상 마지막이다.

어릴 적 그는 잘 먹지를 않아 영양실조에 걸리고 감기를 달고 살 정도로 몸이 허약했다. 발레를 하면서는 허리디스크를 얻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서 있을 수도 없는 지경이지만 수술을 할 수도 없었다. 자칫 다시는 춤을 추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살 때 발레를 시작한 김지영은 1996년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이듬해 18살 최연소 나이에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2002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2009년부터 10년간 수석무용수로 자리를 지켰다.

그는 떠나는 소회를 묻자 눈물이 맺히더니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뒤 “발레단 친구들과 공연하며 농담하고 서로 도와주던 그런 사소한 것들과 젊은 시간들이 정말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래 전부터 ‘그리움이 남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며 “사람들이 지겨워하기 전에 놔 줘야 사람들이 그리워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춤에도 유행은 아니지만 시대라는 게 있어요. 제가 속한 세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 같아요. 이제 새로운 시대의 춤이 나와야죠. 국립발레단에선 무용수가 무대에 설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아요. 제가 계속 남으면 후배들의 기회를 뺏는 것일 수도 있어요”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퇴단을 앞두고 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사진제공=예술의전당




김지영은 러시아 발레의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춤은 알게 되면 그만둔다’는 말도 인용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 춤에 대한 지혜가 쌓이지만 근육 같은 육체가 따라와야 한다”며 “굉장한 책임감이 따르면서 갈수록 무대가 무서워졌다”고 토로했다. 연기와 관록은 쌓이지만 세월을 이기려면 엄격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는 진짜 제 잘난 맛에 춤을 췄다”며 “나이가 들수록 춤은 물론 삶도 자신감과 겸손함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 살아가야 하는 듯 했다”고 말했다.

인생 2막인 강단 도전에 대해서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2020학번 학생들과 만난다’고 묻자 “요즘 애들 무섭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웃어넘긴 뒤 “학생들이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클까 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초등학생들을 가르친 적은 있지만 발레단 입단이 목표인 대학생들은 다르다”며 “프로무용수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악착 같은 정신력을 알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지영은 마지막 공연 ‘지젤’에 대해 “주변에선 발랄한 시골 처녀 지젤역이 잘 어울린다고 했지만 ‘나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며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들었고 공연 후 항상 찝찝함이 남아있던 작품”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부터는 지젤의 감정이 이해되고 여운이 남는다”며 “숙제로 남아있던 작품이자 클래식 대작인 지젤로 마무리한다는 게 의미 있는 듯하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 작품은 지젤이 사랑하던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에게 배신당한 충격으로 죽지만 유령이 되어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지켜준다는 내용이다.

이제 한국에도, 네덜란드에도 동시대를 보낸 현역 무용수는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떤 마지막 무대를 꿈꾸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외국에선 결혼하고 아이 낳고도 복귀한 무용수들이 많아요. 은퇴 무대에 남편과 아이들이 와서 꽃을 주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어요. 나도 저런 사진 한장 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늦었네요(웃음). 무대를 완전히 떠나진 않을 거예요.”.
/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사진제공=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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