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여섯 빛깔 무지개

한기석 논설위원
왼손잡이가 질병이 아닌 것처럼
성소수자도 고쳐야할 환자 아냐
연중 딱 하루 허용된 퀴어축제서
성중립 화장실 필요성 깊이 공감

  • 한기석 논설위원
  • 2019-06-12 18:29:56
  •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여섯 빛깔 무지개

무지개가 왜 여섯 빛깔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사람이다. 나 역시 최근까지 무지개 빛깔은 일곱 개인 줄 알았다. 비 온 뒤 맑은 하늘에 뜨는 무지개는 일곱 빛깔이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는 남색이 빠진 여섯 빛깔이다. 6월 첫째 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9서울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다. 그냥 궁금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얘기를 하는지, 이 사람들의 고민은 무엇이고 뭘 주장하는지 알고 싶었다. 광화문에서 행진에 참여하자마자 옆에 있는 젊은 남자 둘이 뽀뽀하는 게 보였다. 예상했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사이에 진 치고 있는 대한애국당 당원인듯한 아주머니가 담배를 피우며 악을 쓰는데 주위가 시끄러워 들리지 않았다. 옆에 있는 안주인에게 물어보니 “에이즈나 걸려라”라고 말했단다. 저 더러운 입을 어떻게 해야 할까.

행진은 축제였다.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외쳤다. 올해 축제의 슬로건은 ‘평등을 향한 도전’이었지만 당장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자유였다. 하고 싶은 것은 그 무엇이건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가 느껴졌다. 다소 과해 보이는 화장, 조금 야해 보이는 의상은 1년에 딱 하루만 자유를 느끼도록 허용된 사람에게는 턱없이 부족해 보여 오히려 더 부추기고 싶어졌다.

서울광장에 도착해 다양한 부스를 구경한 뒤에야 이 행사가 성소수자축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전까지 동성애자축제인 줄 안 내가 부끄러워졌다. 세상에는 동성애자 말고도 성소수자가 많다. 동성애자는 말 그대로 동성의 상대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여성 동성애자인 레즈비언(lesbian)과 남성 동성애자인 게이(gay)를 지칭한다. 성소수자는 범주가 이보다 훨씬 넓다. LGBTQIA는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약어다. 레즈비언과 게이에 더해 양성애자(bisexual·이성애와 동성애의 욕망을 함께 가진 사람), 트랜스젠더(transgender·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과 정신적인 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퀘스처너리(questionary·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을 아직 확립하지 않은 사람), 간성(intersex·남녀 성기가 같이 있는 사람), 무성애자(asexual·남성이나 여성 누구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를 일컫는 단어다.

이 사람들은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이 이성애처럼 숫자가 많은 쪽에 속해 있지 않은 것뿐이다. 어떤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진실인 것은 아니듯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이 다수와 다르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있는 것처럼 성다수자와 성소수자가 있다. 왼손잡이가 고쳐야 할 질병이 아닌 것처럼 성소수자도 환자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성소수자를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성소수자는 배우지 못한 사람인가. 어떤 가르침을 주면 그들이 크게 깨닫고 성다수자로 바뀌는가. 정작 배워야 할 사람이 자신인 줄을 모르는 그 사람이 안타깝다.

성소수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들을 바라보는 성다수자의 시선이 잘못돼 있을 뿐이다. 그런 잘못된 시선이 성소수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 트랜스젠더는 집 밖으로 나가면 물을 마시지 않는다. 혹시라도 소변이 마려울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들이 화장실에 가면 성추행범이나 성도착범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이들은 성중립 화장실을 요구한다. 성중립 화장실은 장애인 화장실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로 필요하다.

고작 2시간 정도 성소수자와 함께 있고 그들과 대화했는데 어느덧 격의는 사라지고 친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생 뭐 있나. 이렇게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지내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행사장 곳곳에는 개신교 신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와 ‘동성애자 박멸’ ‘동성애자 퇴치’ 등의 팻말을 들고 회개하라고 외쳤다. 하느님이 있다면 저 못된 양들을 긍휼히 여기기를. /hanks@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시선집중

ad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