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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남들 안하는 것에 미친 듯 도전...공연계 돈키호테로 남고 싶어"

[CEO & STORY]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더라이프'로 해외 라이선스 작품 개척

'맘마미아' 2,000회 공연 신기록 눈앞

연극 '레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등

작품 다양화·미래 관객 확보에도 힘써

씻김굿 등 전통문화 '콘텐츠 보물창고'

최첨단 무대 기술로 새롭게 선보일 것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최근 양재동에 위치한 신시컴퍼니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박명성(56·사진) 신시컴퍼니 대표는 ‘공연계의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을 ‘마이너스의 손’이나 ‘돈키호테’라고 부른다. 모두 맞는 말이다. ‘자칭’ 혹은 ‘타칭’으로 그를 수식하는 말들은 한국 공연계의 역사와 현실 나아가 미래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저작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인 지난 1998년 뮤지컬 ‘더 라이프’를 해외에서 들여와 초연하면서 국내 라이선스 뮤지컬의 선구자가 됐다. 이 작품은 ‘대박’이 났다. 그가 ‘미다스의 손’으로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는 돈키호테다. 미치지 않은 돈키호테는 아무 매력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미친 듯이 저지르는 도전정신과 과감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이후 ‘돈키호테’ 박명성은 ‘공연계의 미다스 손’이 됐다. 그는 수익이 나면 어김없이 새로운 연극과 뮤지컬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종 시행착오가 동반되는 창작 작품은 흥행 성적이 부진할 때가 많았다. 이 때문에 그는 뮤지컬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자신을 ‘마이너스의 손’이라 부른다. 하지만 공연계는 박 대표의 과감한 도전으로 해외 작품과 국내 창작물이 선순환하는 뮤지컬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난해는 공연계의 터줏대감이자 최고의 제작사인 신시컴퍼니가 3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였다. 올해는 신시의 대표작인 ‘맘마미아’가 한국 뮤지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해이기도 하다. 오는 16일부터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맘마미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박 대표를 최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신시컴퍼니에서 만났다.

“‘맘마미아’는 이번 시즌에서 2,000회 공연, 200만 관객을 돌파할 예정입니다. 대형 뮤지컬 중에서는 처음 세우는 기록입니다.”

박 대표는 기자를 보자마자 신이 나서 이렇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어 그는 “소극장의 경우 2,000회 공연이 있었을지 몰라도 대극장은 처음”이라며 “중장년 관객에게 뮤지컬의 매력을 느끼게 한 대중적인 작품이기에 가능한 기록”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맘마미아’는 신시의 캐시카우이자 해외 라이선스 작품을 국내에 선보이며 공연의 질을 높이고 관객의 저변을 중장년층까지 확대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 작품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박 대표의 탁월한 안목 덕이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맘마미아’ 공연을 들여왔을까.

그는 “일단 두 덩어리가 무대 위에서 회전하는 무대 메커니즘에 반했다”며 “객석에서는 단순해 보이지만 굉장히 디테일하고 복잡하며 훌륭한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무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장년의 경우 스웨덴 그룹 ‘아바’의 노래 한두 곡쯤은 흥얼거릴 줄 알기에 충분히 관객이 공감하고 감동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덧붙였다. ‘맘마미아’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박 대표가 대중의 심리를 정확하게 간파한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박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다양한 작품을 선도적으로 선보이는데다 미래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작품까지도 미리 확보해 공연계의 마중물이 돼주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빌리 엘리어트’와 ‘마틸다’를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단순한 어린이 뮤지컬이 아닌 ‘라이온 킹’처럼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가족 뮤지컬을 확보해 10년, 20년 후의 관객을 확보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연극 ‘레드’ ‘대학살의 신’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푸르른 날에’ ‘산불’, 뮤지컬 ‘아리랑’ ‘엄마를 부탁해’ 등을 선보여 다양성에 대한 관객의 갈증을 해소해줬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남들이 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요. 남들이 좀 어렵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해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프로듀서의 색깔이자 독창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괴짜 프로듀서, 돈키호테이고 싶어요.”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최근 양재동에 위치한 신시컴퍼니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박 대표는 대학에서 무용과 연극을 전공했다. 연출가이기 이전에 배우이기도 했다. 연기까지 섭렵한 박 대표이기에 그의 작품에 출연하려면 인지도보다는 연기·춤·노래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 결과 박 대표와 한 번이라도 작품을 해본 배우들은 이전보다 기량이 훌쩍 늘게 된다. 그를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다. 그렇다면 박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의 자질은 무엇일까. 그는 “성실성이 최우선”이라며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만 열정도 생기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맷집’이 좋아야 한다”며 “주연이든 조연이든 앙상블이든 이러한 것이 바탕이 돼야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고의 배우를 꼽아달라는 다소 난감한 질문을 하자 고민 없이 최정원과 남경주라고 대답했다. 혼자서도 한 달, 두 달 공연을 할 수 있는 능력·성실함·사명감에다 스타성까지 모두 겸비한 게 두 배우라는 것이다. 마음이 약하고 정 많기로 유명한 그는 두 사람만 언급한 것이 다른 배우에게 미안했는지 김우형·최재림·윤공주·옥주현 등도 좋은 배우라고 극찬했다.



연출부 막내로 입사해 31년째 신시에 몸을 담고 있는 박 대표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프로듀서 겸 대표라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신시는 소위 말해 ‘캐스팅 빨’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이 탄탄하고 충실한 제작사이기 때문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디즈니의 뮤지컬 ‘아이다’ 라이선스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신시만의 장점이 작용했다. 그는 “디즈니는 제작비를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신시가 라이선스 계약에 성공한 것은 연극과 뮤지컬을 두루 하는 회사라는 게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돈키호테라고 부르며 남들이 다 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 ‘뚝심의 프로듀서’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더 선보일까. 박 대표는 굿·강강술래 등 향토색 짙은 한국의 전통문화가 ‘콘텐츠의 보물창고’라며 이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진도 씻김굿, 다시래기 등 토속문화에 관심이 많아 전국의 굿을 찾아 다니면서 봤다”며 “굿은 드라마와 노래·춤이 모두 있는 그야말로 원초적인 창작 뮤지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개·폐회식 총감독을 할 때도 진도아리랑·강강술래·고싸움 등의 전통 콘텐츠를 현대화해 선보였다”며 “향토색이 짙은 지방의 전통 콘텐츠를 최첨단의 무대 메커니즘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앞으로 ‘콘텐츠의 보물창고’에서 어떤 작품을 꺼내 보일지 벌써 기대되는 대목이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63년 해남 △1981년 광주 서석고 △1983년 서울예술대 한국무용과 △1987년 극단 신시 창립단원 △1999년 신시뮤지컬컴퍼니 대표이사 △2003년 단국대 연극영화학과 학사 △2004년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 △2007년 제2대 서울연극협회 회장 △2008년 단국대 뮤지컬제작과정 석사 △2010년 제3회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 △2012년 옥관문화훈장 △2014년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개·폐회식 총감독, 제24회 이해랑 연극상 △2015년 제6대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관객들이 해답 찾아가는 작품 만드는 게 예술하는 이유”

박명성(사진) 신시컴퍼니 대표가 제작하는 작품은 모두 기본기에 충실하다. 연극과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확실하게 재현한다. 언어와 몸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배우들만이 그의 작품에 출연하기 때문이다. 안무가 거의 없는 뮤지컬, 몸을 잘 쓰지 못하는 배우가 나오는 연극이란 박 대표의 사전에 없다. 이는 박 대표가 무용과 연극을 정통으로 배웠다는 게 한몫했다. 그가 각 장르에 딱 맞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기도 하고 필연이기도 하다. 연극과 입시에서 실패하고 재수해 서울예대 한국무용과에 들어간 것이 그 시작이다.

“원래는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재수를 하고 나니 연극과에 넣으면 또 떨어질 것 같아 한국무용과에 지원했어요. 남자니까 들어가기 수월하지 않을까 해서요.”(웃음)

박 대표답게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그는 “당시에는 연극을 하든 무엇을 하든 무용은 필수였다”며 “지난 1980년대 초 극단에서는 펜싱까지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등 고전을 주로 공연했기 때문에 멋진 배우가 되려면 무용은 물론 펜싱 등 몸을 쓰는 법을 배워야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한국무용의 대가 고(故) 최현의 제자이다. 그는 “당시 계속 무용을 할까도 고민했었다”며 “남자 무용수는 밥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지방자치단체에 한국무용단이 거의 다 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무용·연극 등을 두루 거친 그의 경력은 신시만의 작품 색깔을 만들어낸다. 요즘에는 캐스팅에 치중해 안무가 거의 없는 뮤지컬이나 발성·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은 배우가 무대에 서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신시 작품에서 이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신시 뮤지컬은 섬세하고 역동적인 안무가 돋보이며 연극에서도 배우들이 나무토막처럼 서 있지 않는다. “우리나라 창작극을 보면 춤 따로, 안무 따로인 경우가 있다. 작품에 녹아 행간의 여백을 리드하는 게 안무의 역할이다. 세련된 안무는 뮤지컬에서 필수다. 지금 세계 무대에서는 이처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섬세하고 세련된 안무와 움직임이 살아 있는 작품이 트렌드다.”

과거 연극은 우리 시대를 직시하는 중요한 장르였다. 연극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게 연극인들의 사명감이자 책무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대부터 ‘연극쟁이’로 살아온 박 대표는 바로 이 같은 연극정신·예술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는 “저희 작품을 보고 난 후 관객들이 쾌감을 느끼고 뭔가 해답을 찾아가기 바란다”며 “이게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극 ‘레드’를 보고 연극배우 박정자 선생님께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중에서도 연극을 하는 사람은 왜 연극을 하는가’라는 세 문장의 문자를 보내셨다”며 “제게는 숙제와도 같은 말인데 관객들도 한두 가지 이상의 숙제를 안고 객석을 떠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진정한 예술가에 이르는 길은 늘 숙제와도 같다는 것이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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