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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망명 위기는 실화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느슨한 기준에 망명신청 급증

美 남쪽 국경 통제불능 우려

이민시스템 대대적 손질해야





이민 문제에 관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비열하고 인종주의적인 태도 탓에 현재의 망명시스템이 미국을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민주당은 남쪽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인해 트럼프의 핵심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민 문제에 정면으로 맞선 터프가이”라는 그의 이미지가 훼손될 것으로 내심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당은 조심해야 한다. 현재 상황이 대통령에게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지난 2014년 이후 미국으로 들어오려는 망명신청자들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이민법원에 접수된 망명신청서는 2014년에 비해 240% 늘어난 160만건을 헤아렸다. 현재 국경에서 발이 묶인 이민자들의 숫자는 월 10만명에 달한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인구의 각 1%가 올해 말까지 미국으로 이주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라틴아메리카 워싱턴사무국(WOLA)의 추산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30만건 이상의 망명신청서가 계류된 이민법원의 업무는 마비될 것이고 신청서 한 건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700일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망명 규정 또한 애매하기 그지없다. 지나치게 느슨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등 허점투성이다. 망명신청자는 우선 미국 국경순찰대원을 상대로 자신이 고국으로 되돌아갈 경우 심한 박해를 당하는 등 이른바 ‘믿을 만한 위험(credible fear)’에 처하게 된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망명신청자들의 76%는 이 기준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의심스러울 만큼 비슷한 사연을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구구절절 늘어놓는 망명신청자가 한두 명이 아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망명신청 시스템을 이용해 미국에 들어온 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거나 이민법원이 그들의 신청서를 검토하는 동안 노동허가서를 취득해 인력시장에 뛰어든다.

국토안보부의 고위 관리가 4월에 밝혔듯 “미국의 망명처리 시스템은 불이 붙은 상태다.” 미국은 정교한 이민시스템에 따라 매년 약 100만명의 외국인들을 합법 이민자로 받아들인다. 망명 자격은 극한 상황에 처한 소수의 외국인에게 부여되며 통상적 이민 프로세스의 대체 절차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둘은 종종 뒤섞이고는 한다.

애틀랜틱스 데이비드 포럼이 지적했듯 망명신청권이라는 아이디어는 냉전 시대 초반에 나온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상당수 유대인 난민을 거부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유엔은 개인의 정체성이나 신념으로 말미암아 자국에서 처형되거나 투옥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비호권(right of asylum)을 제정했다. 주로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전제주의 정권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호권의 정의는 확대를 거듭했고 지금은 갱 범죄와 가정폭력 위협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에게도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렇듯 느슨한 기준에 망명신청이 미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라는 현실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망명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근래 들어 온두라스와 과테말라·엘살바도르의 살인사건 발생률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 출신의 망명 신청 건수는 오히려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보다 광범위한 맥락에서 보자면 전 세계적으로 가난하고 불안정한 지역에서 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수천만명의 거주자들은 누구나 망명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상적인 이민절차를 우회한 채 뒷문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올 법적 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법은 망명 신청기준을 강화하고 이민법원 판사를 증원하며 자국민의 불법 이민을 차단하도록 멕시코 정부에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일부 입국심사 강화는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망명신청서를 제출한 일부 난민에게 그들의 신청서가 이민법원에 계류돼 있는 동안 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이민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의 이민시스템은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망명 신청기준부터 대폭 강화해야 한다. 망명 관련 업무를 다루는 이민법원과 담당 관리들의 수 역시 크게 확대해야 한다.(전 이민담당 관리인 데이비드 마틴에 따르면 오늘날의 위기는 버락 오바마 재임 중반기에 단행된 예산삭감으로 정부 자원이 고갈돼 망명신청서를 신속히 처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망명신청자들은 미국에서 일하기 위한 방편으로 난민 자격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망명신청자들의 출신국을 모욕하고 협박을 가하거나 지원을 중단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들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부분적인 손질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제 우리는 과거 수차례의 이민위기를 해소하는 데 기여한 바 있는 합리적이며 초당적인 법 제정을 추진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민 문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자비한 접근법을 맹렬히 비난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번과 같은 진정한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

만약 상황이 더욱 심하게 꼬인다면 미국 남쪽 국경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고 대중은 점차 트럼프의 거친 언사와 강경입장에 매료될 것이다. 서방세계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포퓰리즘이 지역을 불문하고 통제 불능의 이민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민주당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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