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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모네·르누아르, 스승에겐 눈엣가시였다

<예술가, 그 빛과 그림자>'애증의 관계' 스승과 제자

-이연식 미술사가

모네·마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

전통 무시하는 것이 최대 과제

스승과 '다른' 그림 그리려 노력

레오나르도의 스승 베로키오는

제자 실력 인정하며 붓 안들어

자존심은 상했지만 기뻤을수도

조토 디본도네, 성모자. 1306~1310년, 우피치미술관




치마부에, 성모자, 1280~1290년, 우피치미술관


예술은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익혀야 하는 것일까.

조르조 바사리의 ‘예술가 열전’은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기록이다. 바사리는 초기 르네상스와 전성기 르네상스의 조형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자신의 손이 닿는 한 자료를 모으고 궁리했다. 오늘날 우리가 르네상스 예술가에 대해 떠올리는 것 대부분은 이 책에서 나왔다.

바사리의 책 맨 앞에 놓인 예술가는 ‘치마부에’다. 그는 바사리가 염두에 둔 예술가 중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활동했다. 그런데 치마부에에 대한 기록은 어째 성긴 느낌을 준다. 치마부에에 이어 등장하는 조토 디본도네에 대해서는 공들여 썼다.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조토는 가장 먼저 언급되고 중요한 인물로 대접받는다. 당대 사람들은 그의 박진감 넘치는 인물 묘사에 감탄했다. 하지만 조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화가는 아니었고 당연히 스승에게 그림을 배웠다. 조토는 치마부에의 제자라고 알려졌다.

중세의 화가와 조각가는 공방(工房)에서 일했다. 공방은 위계질서가 엄격한 곳이었다. 공방의 우두머리인 ‘마이스터’가 ‘도제(徒弟)’를 부렸다. 도제는 우두머리의 자식을 돌보기도 하고 집안의 온갖 잡일도 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예술가 지망생’인데 오늘날의 학원 수강생처럼 예술 기법을 배우다가 경험이 쌓이면 우두머리가 작업하는 것을 도왔다. 제자이면서 조수였던 셈이다. 우두머리가 작업하는 작품이 크거나 넓을 경우 덜 중요한 부분은 도제가 그리거나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도제가 재능을 갖추고 노력을 쌓으면 ‘마이스터’가 됐다. 중세 유럽 도시의 상공업자 조직인 ‘길드’가 마이스터 자격을 심사하고 부여했다. 새로운 마이스터는 자신의 공방을 꾸리고 도제를 거느릴 수 있었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스도의 세계, 1472~1475년, 우피치미술관


치마부에와 조토 사이에는 두 가지 일화가 전한다. 하나는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한 것이다. 어린 조토가 막대기로 땅에 그려놓은 양을 본 치마부에가 그 재능에 감탄해서 제자로 들였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치마부에 공방에서 조토가 보인 솜씨에 대한 것이다. 치마부에가 주문받은 초상화를 그리다가 외출했는데 조토가 그 초상화 위에 파리를 그려 넣었다. 돌아온 치마부에는 그림에 앉은 파리를 쫓으려고 손을 휘젓다가 비로소 그게 가짜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런 일화는 예술가들의 이름만 바뀔 뿐 역사 속에서 계속 등장한다. 예술가들의 전기에는 확연한 패턴이 있다. 에른스트 크리스와 오토 쿠르츠가 쓴 ‘예술가의 전설’은 그런 패턴을 다뤘다. 그중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이렇게 요약할 수도 있겠다.



‘천재 예술가는 스승에게 우연히 발견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스승에게 발견될 때도 뛰어났는데 스승의 공방에서도 단연 돋보이고는 머지않아 스승을 능가한다.’

‘마침내 스승은 제자의 우위를 인정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도제로 시작했다. 베로키오가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에 다빈치가 개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가 세례받는 곁에서 그리스도의 옷을 챙기며 무릎을 꿇고 있는 천사를 레오나르도가 그렸다는 것이다.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의 솜씨에 감탄한 나머지 그 후로는 붓을 들지 않았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는 스승이 제자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처럼 뛰어난 제자에 대해 스승은 어떤 구실을 한 걸까. 물론 스승은 중요했다. 특수한 재료를 다루고 관리하는 법을 공방에서만 배울 수 있었으니까 예술가 지망생은 공방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은 햇병아리 제자에게 일을 가져다줬고 경험을 쌓게 해줬다. 하지만 이는 스승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탁월한 예술가에게는 애초에 스승이 누구든 상관없는 걸까. 이것도 제자가 유명해졌을 때 이야기다. 스승은 유명한데 제자는 존재감이 없을 수도 있다. 레오나르도와 렘브란트의 제자들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16세기와 17세기를 거치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아카데미’가 등장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아카데미가 국가기관으로서 미술의 방향과 예술가의 자격을 통제했다. 예술계가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전통적인 길드는 입지를 잃었다. 또 아카데미는 국립미술학교로 발전했다. 파리의 ‘에콜데보자르’가 바로 아카데미에서 생겨난 국립미술학교다. 미술학교 바깥에는 사설 강습소도 늘어났다.

19세기 중반 이후 미술학교에서 공부하지 않고 성공한 예술가들이 늘어났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스승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에두아르 마네의 스승 토마 쿠튀르는 마네를 끔찍스러워했다. 샤를 글레르에게 제자 모네와 르누아르는 눈엣가시였다. 조토와 레오나르도는 스승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려 했지만 마네·모네·르누아르는 스승과 ‘다른’ 그림을 그리려 들었다. 스승을 거역하고 전통을 무시하는 것이 새로운 예술가들의 과제가 됐다. 인상주의 이후 현대미술은 형제를 죽이고 부모 곁을 떠났던 카인처럼 광야를 헤매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세계 여러 나라의 명문 미술학교는 건재하고 새로이 명성을 불리고 있다. 어리고 가진 것 없는 예술가 지망생에게 미술학교는 예술계로 진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제자의 우위를 인정했던 스승의 심정은 어땠을까. 예술가로서는 자존심이 상하고 스승으로서는 기뻤을 것이다. 거꾸로 자신을 능가하는 제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스승으로는 훌륭하지 못했던 셈이다. 예술에서 스승과 제자는 영원한 애증의 맞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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