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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894년 콘플레이크의 탄생

우연한 발명과 정보 누출

[오늘의 경제소사] 1894년 콘플레이크의 탄생

1894년 8월8일 미국 미시간주 배틀 크리크 요양원. 환자들의 건강 급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은 실수가 일어났다. 급한 일로 자리를 뜬 사이에 옥수수와 밀을 섞은 반죽이 말라버렸다. 윌 키스 켈로그(당시 34세)는 의사인 형부터 불렀다. 형 존 하비 켈로그(〃 42세)는 독실한 신자이자 제칠일안식일교회가 세운 대규모 결핵 요양소인 이곳의 의료 책임자. 음탕한 생각과 수음 같은 행위가 발병과 악화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그는 채식 위주의 식단이 마음과 몸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반죽에도 그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존은 발을 구르는 동생에게 굳어진 반죽으로 조리하라고 시켰다. 건강식 과자가 다른 모습으로 나와도 영양분은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식사를 새로 만들 만큼 예산도 넉넉하지 않았다. 환자들은 처음 보는 얇은 조각(flake)을 의아해하면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채식 위주 식단을 싫어하던 환자들도 실수로 빚어진 건강 급식을 반겼다. 우유를 부으면 간단한 아침식사가 되는 ‘콘플레이크’는 이렇게 태어났다. 형제는 이듬해 5월 말 특허를 취득해 1896년 4월 ‘그라노스(곡물)’라는 이름으로 콘플레이크를 세상에 선보였다.

상업화의 첫 주자도 켈로그 형제일까. 그렇지 않다. 존 박사보다 두 살 아래였던 찰스 윌리엄 포스트가 1895년 ‘포스텀’이라는 회사를 세우며 선수를 쳤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으로 배틀 크리크 요양원에 입원 치료 중 제조법을 익힌 포스트가 세운 회사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1900년에는 배틀 크리크 부근에만 24개의 시리얼 회사가 경쟁을 펼쳤다. 켈로그 형제도 회사를 설립했으나 의견이 달랐다. 형은 요양원 부속기관에 머물기를 원한 반면 동생은 사업 의지가 강했다. 결국 형제는 1906년 갈라섰다. 형제는 1920년 상호 소송까지 겪은 끝에 ‘켈로그’라는 상표의 권리는 동생에게 돌아갔다.

오늘날까지 시리얼 시장은 켈로그와 포스트가 세운 두 회사가 양분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켈로그 형제가 우연히 발명한 콘플레이크는 식생활 문화를 바꿨다. 이전까지 미국인들은 스테이크와 감자·케이크 등 저녁과 비슷한 메뉴를 선호했으나 ‘간편한 아침’이 미국 문화로 자리 잡았다. 시리얼에 우유를 더한 미국식 아침 문화는 더 이어질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시리얼 판매가 감소하는 대신 달걀과 치즈·빵을 곁들인 유럽식 아침이 늘어나는 추세다. 간편함과 시간 절약보다 가족과 얼굴을 맞대고 불로 조리된 음식을 나누는 아침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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