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 중인 명품. 그 가운데서도 명품업계 블루칩이 된 명품 시계. 여성들도 최근 럭셔리 시계에 통 큰 지갑을 열지만 전통적으로 시계란 남성에게 허용된 액세러리 중 가장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지만 이젠 럭셔리 시계가 당당히 명품 시장의 노른자위를 점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가꾸는 그루밍족이 대중성을 띠게 되면서 중년 남성을 물론 젊은 남성까지 기꺼이 자기 표현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인데요. 특히 자기 연출도 비즈니스 능력이라고 여기는 젊은 세대들이 가세하면서 패션의 종결자 시계를 통해 취향과 능력을 드러내려는 영 콜렉터들도 생겨나고 있답니다.
◇“명품 시계 입문자인데”…뭐부터 할까요=내가 어디까지 지불 할 여력이 있는지 예산 범위를 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이어 시계를 착장할 연령과 TPO에 어울리는 시계 브랜드가 무엇인지, 선호하는 브랜드 또는 디자인(메탈 혹은 가죽 스트랩)이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합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오토매틱 시계를 한번 구입하면 오랫동안 착용하기 때문에 예상했던 가격보다 욕심을 내 10~20% 높은 가격대를 구입해야 후회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전문가들은 베젤이 착용자의 손목을 넘는 과도한 크기의 시계를 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크고 화려한 시계가 언뜻 멋스러워 보일 수 있으나 매일 착용할 경우 과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군요. 시계를 좋아하는 누리꾼들은 손목보다 큰 시계를 착용한 경우를 ‘방패간지’라는 표현으로 낮춰 표현한다죠. 일반적으로 정장 차림에 적합한 시계로는 두께가 10㎜ 이내로 얇고 최소한의 기능만 장착해 심플한 디자인에 가죽 스트랩을 사용한 시계를 추천하는 게 정석이지만 최근에는 메탈 소재의 밴드도 선호하는 남성들이 많아졌죠.
온라인 시계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방법도 추천합니다. 2006년 시계 커뮤니티로 시작해 2011년 법인을 설립하고 현재 온라인 매체로 자리 잡은 ‘타임포럼’이나 네이버 카페 회원수 11만명을 자랑하는 ‘와치홀릭’ 등에서 정보를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구매력을 갖춘 실수요자들이 많아 실제 구입 경험기와 착용기, 무브먼트부터 스트랩까지 각종 정보는 물론 국내외 시계 마니아들과 교류도 가능합니다.
◇어려운 시계 용어 뽀개기=브레이슬릿은 시계의 메탈 밴드를 일컫는 한편 가죽밴드는 스트랩이라고 합니다. 시각을 나타내는 숫자와 숫자판은 인덱스, 시계의 손으로 시침과 분침은 핸즈, 시·분·초와 인덱스를 포함한 시계의 얼굴(문자판)은 다이얼로 통칭하지요. 시계 유리면을 감싼 링이나 시계 케이스 위에 위치한 장식링은 베젤, 일명 용두라고 부르는 버튼인 크라운은 태엽을 감거나 시간을 맞추는 데 쓰이죠.
자주 등장하는 용어인 무브먼트는 시계를 구성하는 부품으로 크게 기계식인 메케니컬과 전자식인 쿼츠로 구분합니다. 쿼츠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시계 타입으로 배터리를 통해 동력을 제공하는 시계로 1만원 대부터 몇 천 만원까지 널리 쓰이는 방식입니다. 메케니컬은 용두(태엽), 로터(추)를 통해 동력이 발생하는 시계입니다. 기계식 시계는 어떠한 전자기기도 사용하지 않고 정교한 부품들을 연결시켜 초, 분, 시의 시간을 표현해주며 쿼츠 시계에 비해 일 오차가 1초에서 많게는 1분 가량 정확도가 떨어지는 게 단점입니다. 때문에 수 천 만 원대를 호가하는 모델에는 중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 오차를 자동으로 보정해 주는 뚜르비옹과 달의 기울기를 보여주는 문페이즈를 비롯해 크로노그라래피(스톱워치 기능, 보통 100분의 1초까지 표현)를 내장하거나 GMT(다른 나라의 시간을 보여주는 기능), 날짜와 요일·월 등을 자동으로 바꿔주는 기능 등이 있지요.
◇엔트리 모델부터 시작해볼까요=롤렉스는 여성 보다도 남성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명품 시계 중 같은 가격대 대비 인지도가 가장 높고 환금성이 높아서일까요. 시간이 지나도 가격이 올라 대표적인 ‘시테크’ 모델이라서일까요.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츄얼(600만원 후반대)’은 가장 기본 모델로 독특한 기능이나 베젤 장식이 없죠. 1926년 세계 최초의 방수 손목시계 명성을 떨친 오리지널 오이스터의 유산을 충실히 계승한 모델로서 가장 저렴하지만 기본기를 꽉 채운 완성도 높은 시계라는 평을 들으며 데일리로 착장하기 최고로 꼽힙니다.
롤렉스의 인기 모델인 ‘서브마리너 블랙 데이트’를 빼놓고 가면 섭섭하죠. 서브마리너의 블랙 세라믹 베젤은 존재감이 있게 빛나서 멀리서도 아우라를 뿜어 내지요. 베젤에 각인된 숫자들은 플래티늄 입자들을 쏴서 제작되기 때문에 푸른 은색빛을 냅니다. 내년에 서브마리너가 단종되고 새로운 신형으로 출시된다고 해서인지 지속적으로 가격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200만~1,000만원 정도의 모델이지만 프리미엄이 붙어 1,000만원을 훨씬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는 ‘데이트저스트’는 브레이슬릿 중간 부분이 골드로서 일명 콤비라 불리는 베스트셀러로 구하기가 힘들어 매장에선 쉽게 살 수 없다죠. 오명훈 롯데백화점 해외시계보석팀 바이어는 “롯데백화점 에비뉴엘관 예물판매 1위 시계”라며 “예약부터 수령까지 2~3달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구매 전 미리 예약하는 게 좋다”고 귀띔합니다.
영화 007 카지노로얄과 007 스펙터에 등장한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400만~600만원대)’은 롤렉스, 까르띠에와 함께 ‘롤오까’로 불리는 남성 럭셔리 시계의 대표죠. 출시 50년이 지난 베스트셀러로 1957년 해저 작업 전문가를 위해 디자인된 제품으로 소재 장식에 따라 14가지 모델이 나옵니다. 지난해 나온 4세대 모델은 파도의 물결무늬가 전면에 각인돼 있고 전문 다이버들이 쓰는 시계인 만큼 지름이 길고 두께가 있습니다. 400만원 대의 ‘론진 마스터컬렉션 문페이즈 스틸’은 명품 시계 입문에 있어 가성비가 훌륭한 상품입니다. ‘마스터컬렉션 투카운터 스틸’과 함께 시그니처 모델이죠.
‘IWC 포르토피노 크로노그래프(700만원대)’는 에비뉴엘관 기준 30대 남성 고객층에 특히 인기가 많은 시계랍니다. 시계 양 옆에 푸쉬 버튼과 고급스러운 광택의 브라운 가죽 스트랩으로 유명한데 1960년대 이탈리아 스포츠카의 운전석을 연상시키는 시계 전판과 스톱워치 디스플레이가 스포티하면서도 젊은 남성적인 감각을 부여하니까요.
여성스럽다고 느꼈던 피아제를 찾는 남성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폴로S 크로노그래프(1,800만원대)’는 발광성 인덱스가 놓인 다이얼과 블루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 백이 돋보이는 제품으로 피아제에서 자체 제작했지요. 짙은 블루 컬러 다이얼은 럭셔리함과 스포티함이 공존해 남성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거르쿨트르 마스터 울트라씬 문 39㎜’는 매혹적인 스틸 톤과 순수한 디자인으로 많은 예비 신랑이 찾는 모델이에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직경 39㎜, 두께 9.9㎜의 얇은 케이스의 순수한 디자인이 돋보입니다.
럭셔리 시계 좀 안다는 남성들이 열광하는 파텍필립은 바쉐론 콘스타틴, 오데마 피게와 함께 3대 위버 럭셔리 와치로 꼽힙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 ‘노틸러스’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노틸러스와 비슷하면서도 보다 간결한 디자인의 스포츠워치 라인인 ‘아쿠아넛’을 1997년 발표했습니다. 파텍필립 중 가장 저렴한 시계지만 3,000만원 부터 시작합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피프티식스 셀프와인딩은 이 브랜드의 10번째 콜렉션으로 1956년 선보인 Ref.6073이 모티브입니다. 이경민 갤러리아 하이주얼리&워치 바이어는 “매뉴얼 와인딩이 유행하던 시기에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를 장착해 출시됐고 다면으로 이뤄진 백케이스 덕분에 방수 성능이 우수하다”며 “20대에서 40대까지 넓은 연령대 취향 저격에 성공했다”고 귀뜀합니다. 이탈리아 왕실 해군 특수부대에 잠수용 시계를 비롯한 고정밀 기기를 납품한 역사를 가진 브랜드 파네라이. 수중 작전에 특화된 시계를 만들기 위해 독특한 디자인을 발전시켰는데 ‘쿠션형 케이스’와 ‘크라운가드’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파네라이의 ‘라디오미르 컬렉션(1,500만원대~)’은 직경 47㎜의 넉넉한 사이즈에 다이얼을 보호하기 위해 측면에 쿠션 모양의 디자인으로 견고함을 더했는데 이는 파네라이의 상징이 되었죠.
/심희정기자 yvett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