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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_레터] 1등 당첨금이 7억…'이게 로또냐' 분노 부른 이유

수천 년 전부터 등장…성경에도 기록된 ‘추첨’

100만원부터 407억원까지…당첨금 변화 보니

1등 당첨액 < 집값, 로또 인기에 당첨자 ↑

소득 재분배 효과, ‘서민 호주머니 턴다’ 비판도

한해 로또 판매량 역대 최고를 기록했던 2018년 서울 종로구의 한 유명 복권방 모습 / 연합뉴스




“이번 주 로또 당첨 안 돼서 정말 다행이다. 운을 어이없게 날릴 뻔했네.”

지난 추석 연휴(14일) 로또 추첨 결과를 두고 사람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제876차 동행복권 1등 당첨자가 무려 19명이나 나오면서 1인당 당첨금이 각 10억 9,000만원에 불과했거든요. 33% 세금까지 떼고 난 실수령액은 약 7억 3,000만원, 이는 서울지역 아파트 한 채 평균 실거래가(7억 5,814만원/2019년 국토교통부 통계)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습니다.

보통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4만 5,060분의 1로, 번개에 맞을 확률(600만분의 1)보다 더 낮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논란의 회차만 놓고 다시 계산해보면 1등 당첨 확률이 447만 8,335분의 1로 2배 가까이 올라갑니다. 물론 서민들에게는 7억원도 쉽게 구경할 수 없는 큰 돈이죠. 그러나 과거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당첨금이 나왔던 때와 비교하면 ‘당첨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각박한 세상, 누구나 부자 되기를 꿈꾸는 ‘계층 사회’ 속에서 서민들의 유일한 희망이던 로또 복권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 수천 년 전부터 등장한 복권…성경에도 기록된 ‘추첨제’

추첨을 통해 소수에게 재물을 나누는 ‘복권’은 동서양 구분 없이 역사가 아주 깊습니다. 학자들은 인류의 생산 활동과 함께 덧셈과 뺄셈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추첨’ 개념의 놀이가 흔했던 것으로 보고 있죠. 먼 옛날 원시인은 동물 복사뼈(정육면체 모양)로 주사위를 만들곤 했고, 기원전 16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선 타우(Tau), 세나트(senat)라는 추첨 놀이(도박)가 성행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이집트 왕비 네페르타리의 무덤에 기록된 게임 ‘세나트’를 하는 모습. / 위키피디아


중국 만리장성 항공사진 / 출처=내셔널 지오그래픽


‘추첨’이란 단어는 성경에도 자주 나오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땅을 공평히 나누기 위해 제비뽑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각 지파들 중 사람 수가 많은 지파는 큰 땅을 놓고, 사람 수가 적은 지파는 작은 땅을 놓고 추첨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은 순간에도 로마 병사들은 예수의 옷을 누가 갖느냐를 놓고 주사위를 굴렸다죠.

공공기관에서 공익적 목적으로 복권을 판매한 것도 오래됐습니다. 기원전 200년 중국의 진(秦) 시황제는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복권을 팔아 국방비 일부를 마련했습니다. 로마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도 도시 복구 자금 때문에 복권을 수시로 팔고 노예나 집, 선박 등을 나눴다고 합니다. 여러 숫자 중 일부를 추첨하는 오늘날 형태의 복권이 나온 것도 1500년 전 얘깁니다. 30∼50개의 숫자 중에서 5∼7개를 맞히는 방식의 로또 복권은 530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등장했죠. 이때부터 ‘운명, 행운’이란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 ‘로또(lotto)’가 복권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고유명사로 자리잡습니다.

■ 100만원부터 407억원까지…우리나라 로또 당첨금 이야기

우리나라 복권의 역사는 1948년 런던올림픽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대한올림픽위원회는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1매당 100원씩 총 140만 장의 복권을 발행했죠. 1등 당첨금은 100만원이었습니다. 1940년대 100만원은 어느 정도 가치일까요? 1937년 발표된 ‘백만원이 생긴다면’이란 노래의 가사에 자세히 나옵니다. ‘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 금비녀, 보석반지 하나 살테야 음, 그리고 비행기도 한 대 사 놓지~’ 각종 보석들은 물론 비행기도 살 정도라니, 그 가치가 얼마나 컸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1969년에 등장한 주택복권은 한국 정부가 발행한 최초의 추첨식 정기 복권이었습니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라는 구령이 유명했죠. 각 숫자 룰렛판 앞에 선 추첨원이 이 구령에 맞춰 버튼을 누르면 다트가 날아와 판에 꽂히며 각 숫자를 선정하는 방식입니다. 지금도 연금복권 추첨 때 이 방식을 사용합니다. 주택복권의 초기 1등 당첨금은 300만원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일반 주택 평균 가격이 200만원 가량 됐다고 하니, 번듯한 집을 마련하고도 풍족하게 살 수 있었죠. 당첨금은 물가 상승과 함께 올라 1978년 1,000만원, 1981년 3,000만원, 1983년 1억원으로 뛰었습니다. 80년대에 1억원이면 서울 강남 큰 평수의 아파트도 거뜬히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택복권은 지난 2006년 4월 5억원의 당첨금을 끝으로 37년의 역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당첨금보다 집값이 더 비싸져 그 인기가 시들해진 데다 최고 당첨 액수에 한계가 없는 로또 복권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로또는 2002년 12월 국내에 처음 도입됐습니다. 서민들은 이번에야말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로또를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죠. 매주 판매되는 로또는 당첨자가 없으면 당첨금이 이월되는데, 7회부터 9회까지 3주 연속 이월되며 1등 당첨금이 800억 원에 달한 적도 있었죠. 2003년 4월 19회차 때는 1명이 무려 407억 원에 달하는 당첨금을 가져갔습니다.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을 TV 앞으로 불러들였던 주택복권 추첨 생방송 장면


■ ‘사행성’ 비판에 이월횟수 제한…로또 인기에 당첨자도 ↑

수백억 원에 달하는 로또 당첨금에 온 나라가 들썩인 즈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갑니다. 당첨금 때문에 단란했던 가정이 파탄을 맞는 등 로또로 인한 부작용이 속출했죠. 당첨금 분배 문제로 가족이나 친구끼리 법정에 서는 일도 많았습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쥐게 됐지만 순식간에 탕진하고 도박에 손을 대는 등 나락으로 추락한 사례도 있었고, 올해 6월에 상습절도 혐의로 입건된 이를 붙잡고 보니 지난 2006년 로또 1등 당첨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사행성 조장이라는 비판 여론이 대두하면서 정부는 2003년 로또 당첨금 이월횟수를 2회로 제한하고 게임 가격도 1회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렸습니다. 로또는 총 판매액수의 50%를 당첨금으로 나누기 때문에 결국 총 당첨액수도 예전만 못하게 된 거죠. 또한 지난 10회차 동안 1등 당첨자 수는 871회(1등 7명, 당첨금 27억원)를 제외하고 모두 10명을 넘겼습니다. 그만큼 로또를 찾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당연히 1명이 나눠 갖는 당첨금도 확 줄었습니다. 400억 원에 달하는 당첨금이 나왔던 때의 1등 당첨액은 평균 99억원. 지난 7월 말 동행복권 869회부터 현재까지 두 달 동안의 1등 당첨액은 평균 16억원으로 5분의 1가량 줄었습니다.

사실 로또 확률로 따졌을 때 당첨자가 10명 내외로 나오는 게 비정상은 아닙니다. 가장 최근의 로또 877회는 약 845억원어치가 팔렸고 1등 당첨자는 12명이었습니다. 확률 상으론 9.6명이 당첨되는 게임이었죠. 결과적으로 과열 양상은 줄고 사행성 비판 여론도 가라앉았지만 구매자 입장에선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 공공재원 조달 마련 목적…‘서민 호주머니 턴다’ 비판도

미국의 로또는 천문학적인 당첨금으로 유명합니다. 미국에선 지난 2016년 1월 역대 최대 당첨금인 15억8,600만 달러, 우리 돈 1조8,032억 원을 각각 세 명이 가져갔습니다. 2018년 10월에는 15억3,700만 달러, 우리 돈 1조7,475억 원짜리 복권을 단 한 명이 차지하기도 했죠. 미국 로또가 한국과 다르게 천문학적 당첨금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메가밀리언스’는 1에서 70까지 70개의 화이트번호 중 5개 번호와 1에서 25까지 25개 번호 중 1개 메가볼을 맞춰야 하는 게임입니다. 확률은 무려 3억260만분의 1에 달하죠. 라이벌 복권인 파워볼 역시 2억9,200만 분의 1의 확률입니다.

미국에서도 높은 당첨금을 주는 복권 사업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일확천금을 단숨에 거머쥔 이들 중 돈을 물 쓰듯 흥청망청 쓰다 온 가족이 마약 중독으로 숨지는 일도 있었고, 당첨자의 가족이나 친척을 납치·살해당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죠. 그러나 정부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습니다. 세금을 거두려고 하면 납세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복권은 그렇지 않거든요.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복권을 두고 “고통 없는 세금, 이상적인 재정 수단”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미지투데이


이런 이유로 전 세계 각 나라에 100여종의 복권이 인기리에 발행되고 있습니다. 국내 로또의 인기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총 3조9,658억원어치, 1일 평균 119억원어치가 팔렸는데 올해는 온라인 판매까지 가능해졌죠.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6% 많은 2조3,600억원어치 로또가 판매됐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1등 당첨자를 기대(?)해볼 수도 있을 듯 하네요.

일각에선 정부가 서민들 호주머니를 털어 재정을 마련한다는 ‘소득 역진성’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론 복권은 도박 욕구를 갖는 ‘위험 선호자(risk-lover)’에게서 돈을 받아 그것을 ‘위험 회피자(risk-averter)’에게 이전시키는 소득 분배 체계입니다. 정부가 사행 사업을 직접 관리하면서 비교적 사회에 덜 해로운 방향으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기능을 수행하죠. 실제로 당첨금을 뺀 총 판매액의 42%가 복권기금으로 조성되는데 그중 65%는 저소득층 복지, 장애인, 여성 등을 위해 사용되고 35%는 과학기술진흥기금, 중소기업창업 및 진흥기금 등 10개 법정배분기관에 지원되고 있습니다. 비록 1등 당첨은 아니더라도 복권 구매 뒤 일주일간 기대감에 설렜다면, 또 내가 낸 적은 돈이 모여 공익 사업에 쓰인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낙첨에 따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

/강신우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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