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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4시] 우리는 진정 ‘따듯한’ 사회로 가는가

■ 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
日, 27번째 노벨상 수상자 탄생
끈기·유연성 발휘한 연구자 지혜
따듯한 포용사회가 시너지 효과
韓, 갈등 멈추고 '다름' 품어야

  • 2019-10-20 17:34:07
  • 사외칼럼
[한반도 24시] 우리는 진정 ‘따듯한’ 사회로 가는가
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

올해 노벨화학상은 리튬이온전지 개발의 공적을 인정받은 스탠리 휘팅엄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와 존 구디너프 텍사스(오스틴)대 교수, 그리고 요시노 아키라 아사히카세이 명예펠로가 공동으로 수상했다. 휴대용 전자기기는 현대 사회인들의 의사소통이나 직업환경 등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가볍고 재충전이 가능하며 오래가는 리튬이온전지의 개발이 자리하고 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3인은 서로 개별적이지만 이어진 노력에 의해 리튬이온전지의 사용을 가능하게 했다.

일본은 이번 요시노 명예펠로의 수상으로 27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한 명만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과는 그 숫자에서 비교가 안 된다. 숫자의 차이도 있지만 노벨상 수상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에서 한일 간에 어떤 차이가 있어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근대화 및 경제성장의 역사적 경험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저력의 차이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는 지난 1949년 최초의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2010년에 들어서는 거의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본이 쌓은 그동안의 노력이 최근에 결실을 거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도 좀 더 기다리면 노벨상을 탈 수 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한일의 노벨상 수상의 차이점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일본이 요시노 명예펠로의 수상 소식으로 가득했을 때 한국은 조국 전 법무장관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정당구도나 여론구성의 측면에서 분열적이고 대립적인 한국의 상황과 보수주의적 성향으로 점차 수렴돼 가고 있는 일본의 상황은 대조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환경의 차이가 노벨상에도 그대로 투영되는 것은 아닐까.

요시노 명예펠로는 수상소감을 묻는 인터뷰에서 연구성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것을 기초연구라는 고독한 작업을 통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는 단계의 ‘악마의 강’, 기초연구의 성과에 따라 이를 제품화 및 사업화하는 개발연구 단계의 ‘죽음의 계곡’, 그리고 세상에 나온 신제품이 가치를 인정받아 팔리게 될 때까지의 ‘다윈의 바다’라는 세 가지 관문으로 설명한 바 있다. 각 단계가 매우 지난한 작업이지만 그중에서도 마지막 ‘다윈의 바다’가 가장 견디기 어렵다는 게 그의 표현이다. 그러면서 ‘끈기(집착심)’와 ‘유연성’을 조화롭게 발휘하는 연구자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끈기’와 ‘유연성’을 조화시키려는 연구자의 노력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격려와 성원으로 크게 보충되고 상승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따듯한’ 포용사회가 연구성과를 잉태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고 제시한 것도 무엇보다 이러한 상승작용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4년간 한국은 북한을 포함한 외교 문제나 성장 및 복지와 같은 경제 문제 등에 있어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성향에 따라 분열한 사회였다. 분열을 피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 등으로 초반 높은 지지율을 보였던 박근혜 정부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공천 과정에서의 갈등과 최순실 사태 등으로 자멸의 길을 걸었다. 그러한 과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정권을 잡은 현 정부도 그동안의 높은 지지율에 안주한 탓인지 엉뚱하게 보이는 검찰개혁의 몽니로 사회를 분열의 길로 몰아넣었다. 높은 지지도가 오히려 자만을 가져오고 상대방과 소통하지 않고 배척하는 자세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사회 갈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할 줄 아는 유연성 또는 변증법적 과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자원이라고는 인재밖에 없는 한국에서 누구를 배척하고 말고 할 여지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정치적·정책적 의견이 다르다 하더라도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해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끄는 ‘따듯한’ 사회를 추구한다면 그 결과가 노벨상 수상으로도 이어질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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