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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반짝이는 밤하늘에 '우리 문화' 심어보자

■별들과의 대화- 외계행성 작명하기

심채경 경희대 우주과학과 학술연구교수

천체 관측기기·기술 발전하면서

명왕성이 행성 지위 박탈당하고

외계행성 4,100개 새롭게 발견

2015년 이어 올 두번째 이름공모

보현산 천문대서 발견 '8Umi'

우리나라서 작명하기 투표 실시

천문硏 홈피 '온라인 한표' 행사를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왜소행성 중 하나로 재분류된 것은 지난 2006년 국제천문연맹 투표 결과에 의해서였다. 어린 시절, 태양계 행성의 이름 앞글자만 따서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순서를 외웠던 사람들에게 마지막 ‘명’을 묵음으로 처리해야 하는 당혹의 시대가 시작됐다. 분명 행성이라고 배웠는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지를 않나, 지구의 세차운동 때문에 황도 12궁이 13궁으로 변해 생일 별자리가 바뀔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지를 않나, 하늘에 있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줄 알고 ‘이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하며 갖은 맹세를 다 했건만 천상의 세계도 변한다니 이 무슨 변고인가.

고대의 인류도 하늘을 올려다봤을 것이다. 해가 이끄는 시간을 따라 생활하고 별 사이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달을 눈으로 좇고 혜성이 나타나면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때도 명왕성은 제 궤도를 묵묵히 돌고 있었다. 우리가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방탄소년단이 명왕성의 번호 134340을 노래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우주는 여전히 자연 그대로인데 우리가 밤하늘은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교과서의 천문학 단원도 개정을 거듭한다.

NASA의 뉴호라이즌스호가 촬영한 왜소행성 명왕성(오른쪽)과 그 위성 카론(왼쪽) /NASA




태양계 행성의 수가 하나 줄어든 것에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행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면 명왕성을 왜소행성으로 분류한 것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은 맨눈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밤하늘에서 별과 행성을 구분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되고 뻔한 개념이었으므로 행성이란 무엇인가를 특별히 정의할 필요도 없었다. 태양 주위를 돌면 행성, 그 행성의 주위를 돌면 위성, 위성은 아니지만 행성보다 많이 작으면 소행성, 때때로 태양 주위로 다가와 먼지와 연기를 흩뿌리며 지나가면 혜성이었다.

그런데 관측 기기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런 대강의 분류에 속하지 않는 예외가 많이 발견됐다. 명왕성 근처에서 비슷한 천체가 여럿 발견되자 이들의 정체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명왕성을 행성이라고 하자니 그 이웃들도 모두 비슷한데 그중 누구만 행성이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기가 애매모호해졌다. 과학기술은 갈수록 더 발전해 앞으로도 명왕성의 이웃들이 더 많이 발견될 텐데.

2006년 그 기준을 정하게 됐다. 태양 주위를 도는 둥근 천체 중 궤도를 독점하면 행성, 궤도에 이웃이 있으면 왜소행성으로 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명왕성은 왜소행성으로 분류됐다. 명왕성을 발견한 게 미국의 연구팀이라는 사실에 유럽의 천문학자들이 불만을 품고 행성 명단에서 끌어내렸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천체를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는 이런 일은 국제천문연맹(IAU)이 도맡아 하고 있다. 그렇다고 IAU에서 전권을 휘두르는 것은 아니고 발견자에게 이름 붙일 기회를 주며 그 명단을 관리한다. 때때로 전 지구인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기도 한다. 명왕성의 공식 명칭인 ‘Pluto’라는 이름도 공모전 당선작이다. 잉글랜드의 한 소녀가 로마 신화 속 저승 신의 이름을 제안했던 것이다. 내가 지구 밖 우주에 이름을 붙이다니, 그 이름을 전 세계인들이 영구히 부르게 된다니, 과학자들의 논문에도 그 이름이 사용된다니, 그것 참 근사하지 아니한가.



작은곰자리에 있는 별 8 Umi(오른쪽)와 그 주위를 도는 행성 8 Umi b(왼쪽). 이들의 이름을 정하는 온라인 투표가 진행 중이다./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


21세기 들어서는 태양계 안에서보다 바깥에서 행성이 더 자주 발견된다. 지금까지 발견하고 검증도 마친 외계행성이 오늘 날짜 기준으로 4,100여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발견한 팀에서 붙인 번호로 관리되고 있지만 가끔은 공모전이 열린다.

2015년 14개의 별 주위를 도는 총 31개의 외계행성의 이름을 공모했다. 1차로 받은 여러 후보 중 몇 개를 추려 2차는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우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므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고르게 된다. 보통은 신화 속 혹은 실존했던 인물의 이름을 붙이지만 물건이나 장소의 이름, 혹은 어떤 추상적인 단어가 될 수도 있다. 2차 투표에 어떤 후보가 올라왔나 둘러봤더니 과연 ‘진실’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본뜬 ‘Veritate’, 목성의 위성과 토성 고리를 발견했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름 ‘Galileo’ 등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Udon’과 ‘Soba’도 있었다. 방 조명이 어두워서 알파벳을 잘못 읽었나 하고 잠시 먼 데를 보고 눈을 두어 번 깜빡깜빡해본 뒤 다시 보아도 우동·소바였다. 그렇다. 어떤 나라, 어떤 문화권에서는 그것이 하늘에 붙일 가치가 충분한 중요 단어일 수도 있다. 지금 우주를 논하고 있는데 이 작은 지구에서 뭐 그런 일로 깜짝 놀라다니, 그건 내가 부덕한 까닭일 뿐. 민주적 지구인답게 다른 후보에 한 표 보태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다행히 최종적으로 확정된 외계행성 이름에 음식 이름은 없었다.

올해 두 번째 공모전이 열렸다. 이번에는 이름 지을 대상을 나라별로 나눠 투표를 진행한다. 우리나라에 배정된 것은 작은곰자리의 별 ‘8 Umi’와 그 주위를 도는 행성 ‘8 Umi b’이다.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이 보현산 천문대의 1.8m 망원경으로 발견한 첫 번째 외계행성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특별한 대상이다. 여러분 지갑 속 만원권 지폐 뒷면에 나오는 바로 그 망원경이다. 공모전 1차에 300여개 이상의 제안이 들어왔고 그중 8개 쌍을 추려 온라인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외계행성이름짓기’를 찾아 들어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도록 하자. 투표만 할 게 아니라 후보로 올라온 우리 신화 속 아름다운 이름들, 우리 문화에 중요한 이름들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기억하기로 하자.

심채경 경희대 우주과학과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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