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공정이다. 젊은이들이 조국 사태에 분노한 것도 그래서다. 불공정 게임으로 인한 학벌의 대물림과 그에 따른 계급의 세습은 조국 사태에서 새삼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5060 기득권 세력의 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사회 곳곳에서 번졌다. 그렇다면 국가와 정부의 역할은 뭔가. 정부의 힘은 재정에서 나온다. 불행히도 재정 정책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진작부터 세대 갈등의 조짐이 엿보인다. 우리나라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세대 간 갈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재정학자가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우리나라 복지 수준은 새로운 지출 항목을 만들지 않더라도 저절로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선다”며 “이대로 가면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치권의 기회주의적 재정 운용이 국민으로 하여금 재정 환상을 부추기고 있다”며 “앞으로 5년 이내에 재정이 지속 가능하도록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도신도시에 위치한 인천대 연구실에서 옥 교수를 만났다.
-내년 513조원 규모의 슈퍼예산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전년 대비 예산 증가율이 올해 경상 성장률의 3배 수준이다. 흔한 일은 아니다. 예산증가율이 반드시 성장률보다 낮아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정부 부문의 비대화다. 현 정권은 정부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없는 것 같다. 혁신 성장한다면서 정부 규모를 키우는 것은 엇박자다. 정부가 커지면 관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시장 개입의 여지가 많아진다. 돈은 누가 버나. 관료가 아니다. 기업이다. 기업가는 위험부담을 지는데 혁신은 바로 위험부담을 감수할 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경제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면 경기 진작을 위해 확대 재정이 필요하지 않나.
△물론이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확장 재정을 하더라도 지출 구조조정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불용 예산도 많고 쓸데없는 예산이 어디 한두 개인가. 지출 구조조정은 재정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높이자는 데 있다. 재정 확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경기 진작이 필요하면 생산성 향상과 잠재 성장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미래 세대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재정개혁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확대 재정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양호하다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과연 미래를 생각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점 등을 생각한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우리 재정이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이미 2010년대 들어 국회와 국책연구기관은 물론 정부조차 인정했다. ‘지금은 괜찮다’는 식으로 진실을 외면하면 다음 세대에는 세금폭탄이 떨어질 것이다.
-미래 세대의 부담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세대 간 부담과 수혜의 공정성이 전제돼야 한다. 한 연구를 보면 50대 중반부터 평생 낸 세금보다 복지 혜택을 더 많이 받는다. 요즘 말로 하자면 5060세대가 꿀 따먹고 자식 세대인 2030세대에게 비용청구서를 돌리는 격이다.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나. 재정정책이 이대로 가면 세대갈등이 커져 조세저항을 부를 수 있다.
-고복지-고부담, 중복지-중부담 논쟁이 있다. 적정한 복지 수준은.
△이런 논쟁 자체가 난센스라고 본다.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새로운 복지지출이 없더라도 시간이 흘러가면 저절로 선진국 수준의 고복지 국가로 간다.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11% 수준인 복지지출은 오는 2040년이면 선진국 수준인 20%대로 올라선다. 복지지출은 이미 급행열차에 올라탔다. 중요한 것은 재정이 뒷받침되느냐 여부다. 복지지출은 눈덩이처럼 늘어나는데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진실의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 임계점을 언제로 보는가.
△국회예산정책처는 2012년부터 3차례에 걸쳐 2036년이면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개인적으로는 국민연금 적립액이 줄어드는 2040년쯤으로 본다. 적립금이 계속 쌓이는 시기라면 거시경제 운용에 큰 탈은 없을 것이다. 가령 재정적자로 국채를 발행해도 연금에서 소화가 가능하다. 만약 적립금이 꺾인다면 국민들은 직감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낄 것이다. 미래가 불안하면 국민들은 허리띠부터 졸라매 어떤 경제정책도 약발이 듣지 않는다. 지금 그런 조짐이 있다. 다들 노후가 불안하니 부동산 사서 임대하려는 것이 아닌가. 재정위기에 봉착하지 않으려면 최소 10년 전부터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을 세우고 뼈를 깎아내는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앞으로 5년 동안 재정정책은 우리나라 진로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행정부의 재정개혁 의지와 추진력이 중요하지만 결국은 여야 정치권의 실천력이다. 국가재정 문제는 미래의 운명을 좌우하기에 진영논리를 따질 것이 못 된다. 모든 정권에서 준수할 수 있는 재정준칙을 입법화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재정개혁은 현실적으로 집권 초반이 아니면 어렵지 않나.
△그렇다. 정부가 2016년 강력한 재정준칙을 담은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이미 그때는 정권의 원심력이 커진 시기였다. 주역에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재정위기에 대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차기 대선에서 재정개혁을 공론화하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대선 때마다 조금씩 진화해왔다. 박근혜 정부 땐 공약가계부를 내놓았고 현 정부는 재정중심의 국정과제를 내놓았다. 재원대책 등이 빠졌지만 과거에 비해 진일보했다. 그동안 ‘먹튀 정부’를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유권자들의 의식도 많이 높아졌다. 젊은 세대가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개혁을 하려면 재정에 대한 냉정한 진단부터 필요하지 않나.
△재정위기의 경고등은 학자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단순 개인의 의견이나 주장으로 무시하려 들 것이다. 권위 있는 기관에서 재정이 장기적 위험성에 노출됐음을 지속해서 경종을 울려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그런 기능을 하지 않나.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국회의장이 수장을 임명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 지난해 내놓은 장기전망(2019~2050년)은 종전보다 대폭 후퇴했다. 한마디로 장기재정 전망을 ‘마사지’했다는 의구심이 든다. 2016년 보고서를 보면 2050년 국가부채비율이 111%였지만 지난해 전망에서는 85.6%로 뚝 떨어졌다. 2060년까지 했던 전망치마저 2050년으로 줄어들었다. 전망이 (낙관적으로) 달라졌다면 그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지만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내년에 어떻게 전망할지 지켜볼 것이다.
-재정을 감시할 정치적 독립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이유가 그래서인가.
△그렇다. 구성원이 여야 동수라고 해서 기구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임기의 보장이다. 정권의 부침에 상관없이 임기를 보장해줘야 눈치를 보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 적폐라며 인적 청산을 하면 어떤 조직이든 중립성을 지키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예산정책처의 거버넌스 구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권구찬선임기자 chans@sedaily.com
He is…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정 전문가. 1957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부산고·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기획조정위원을 맡을 때 정부조직 개편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후 국책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과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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