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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의 뒤안길]이성계가 금강산에 봉납한 사리기

'매향의식'과 닮아...민중 구원할 미륵 자처

보물 제1925호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사진제공=문화재청




조선을 개국하기 직전인 1391년, 이성계는 자신의 야망을 담은 사리기를 불교 성지인 금강산의 비로봉 돌함에 봉안한다. 사리기 발원에는 이성계를 비롯한 두 번째 부인 강비, 승려 월암, 황희석·홍영통·박자청 등 그의 측근들이 동참했다.

보통 사리기는 부처나 고승들의 탑에 봉안하지만, 이 사리기는 형식과 법식에서 전혀 달랐다. 이성계가 발원한 사리기의 봉안방식은 고려 후기에 유행한 매향의식과 닮아 있다. 매향의식은 침향을 바닷가에 묻어 미래의 구원자인 미륵불의 이상향에서 살기를 바라는 신앙행위다.



이성계는 고려 말 혼탁한 세상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불교의 불사리 장엄의식과 민간의 매향의식이 지닌 형식과 내용을 빌려왔다. 금강산에 머물며 1만2,000명의 권속을 데리고 산다는 담무갈보살을 좇아, 금강산에서 자신의 야망을 담은 사리기를 봉납했다. 역사책에도 없는 이성계의 진솔한 이야기는 이 사리기에 명문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결국 그는 고려 태조가 금강산 절고개(拜岾)에서 담무갈보살을 친견했다는 상징적인 공간에 사리기를 봉안하고, 1년 뒤 그가 소망한 대로 새 나라를 건국했다.

이 사리기는 봉안한 1391년으로부터 626년이 지난 1932년, 금강산 방화선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됐다. 이후 85년 만인 2017년 1월에 보물 제1925호로 지정됐다. 백자·금·은·동·유리로 구성된 사리기의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인데다 명문을 통해 역사를 추론할 수 있어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사리기를 시대의 물결 위에 띄워서 보면 이성계는 자기 자신을 미륵이 세상에 나올 때 등장한다는 무결점의 군주나 미래의 구원자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손영문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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