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1월29일, 로널드 레이건(사진) 미국 대통령이 ‘NSDD-66’에 서명했다. NSDD란 국가안보결정지침(National Security Decision Directives)의 줄임말로 예순여섯 번째 지침은 소련에 대한 비밀경제전쟁을 위해 마련됐다. 정교한 금융봉쇄와 고도기술·석유자원에 대한 타격을 골자로 한다. 소련 경제 마비를 목적으로 진행된 이 문건은 1995년에서야 기밀문서에서 풀렸다. 문서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무릎을 쳤다. 구소련과 동구권 경제가 무너진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NSDD-66을 승인받은 뒤 서방 국가들과 보이지 않게 공동보조를 취해나갔다. 캐나다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영국 등 선진7개국(G7)은 소련산 천연가스 매입 중단 및 신규계약 금지, 노르웨이의 북해산 유전 활용 등 서구 사회 안에서 대체수단을 찾는 데 합의했다. 뉴욕과 런던에서는 소련의 채권 금리를 대폭 올려 상환 부담을 늘리고 단기채권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기밀문건 어디에도 소련산 자원 수입금지와 유가 하락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미국은 주요 산유국과 접촉하며 유가를 떨어뜨리려 애썼다.
미국의 의도는 경제 부문 공격을 통한 소련의 군사 부문 견제.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친 석유 위기로 소련은 뜻하지 않은 횡재를 만났다. 유전이 속속 개발되던 순간에 국제유가가 오르며 오일달러가 밀려들어온 것. 과도한 군사비로 재정난을 겪던 소련은 달러와 파운드·마르크·엔 같은 서방의 경화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부족한 경공업 제품과 우크라이나 흉작으로 부족해진 곡물을 수입하고 고성능 제품을 사들이던 소련은 더욱 원유 증산에 나서 전체 수출의 60% 이상을 원유에 의존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미국은 처음에는 소련산 원유와 천연가스 신규 수입을 막는 데 주력하다 기존 수입까지 막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마침 사우디아라비아가 호메이니 회교혁명이 발생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유가 하락에 찬성하며 1980년대 초중반 저유가 기류가 생겼다. 배럴당 30달러까지 치솟던 국제유가는 7달러 선까지 곤두박질쳤다. 친미 산유국들은 유가가 떨어져도 시장점유율을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생산을 최고 4배씩 늘렸다. 유가는 더욱 하락해 최소한 200억달러 이상을 잃은 소련은 소멸하고 말았다. 한국은 덕을 봤다. 저유가에 저금리·저환율이라는 3저 호황이 찾아들면서 1986년부터 최초의 흑자 기조에 접어들었다. 국제자본의 칼은 또 어디를 겨눌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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