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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586년 영국에 감자 전래

각국 국민음식으로 부상

[오늘의 경제소사] 1586년 영국에 감자 전래

1586년 12월3일 영국 플리머스항. 북미 식민지 개척을 위해 떠났던 배가 돌아왔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기대했던 금도, 정착할 만한 땅도 찾아내지 못한 탓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신인 월터 롤리가 주도한 개척단이어서 주목받았지만 내보일 만한 결과물은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가치를 몰랐던 식물 몇 가지가 처음 영국에 들어왔다. 감자와 담배. 롤리의 개인교사이던 토마스 해리엇(Thomas Harriot)은 요즘의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탐험과 원주민과의 물물교환으로 얻은 수집물을 잔뜩 가지고 돌아왔다.

영국에 감자가 전해진 시기가 이보다 빠르다는 설도 많지만 그 주역이 해리엇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태양의 흑점을 연구하던 천문학자였지만 당시 20대 중반의 청년이던 해리엇은 롤리 경의 부탁으로 북미로 건너가 생태계와 환경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도 남겼다. 롤리 경이 개척하려던 로어노크 식민지는 성공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사라지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해리엇은 감자는 물론 인디언의 담배 건조기술까지 전했다. 미국의 초기 담배산업도 해리엇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헤리엇은 훗날 부등호(>, <)를 처음으로 문서에 남긴 수학자이며 갈릴레오 갈릴레이보다 망원경으로 달을 먼저 관측한 천문학자라는 명성도 얻었다.

영국에 들어온 북미산 감자는 스페인이 1520년대에 소개했다는 페루산 감자보다 빠르게 퍼졌다. 아일랜드에 거대 농장을 갖고 있던 롤리 경에 의해서다. 도입 초기에는 하층민의 음식으로만 취급받았으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수확이 많다는 점이 부각하며 각국의 국민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감자가 없었다면 18세기 산업혁명과 국민국가의 출범이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카를 마르크스의 후원자이자 자본론의 일부를 집필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감자가 철 이상의 역할을 해내며 산업혁명을 부채질했다’고 봤다.

독일의 토대인 프로이센을 강대국으로 키워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인구증가 정책에도 감자는 크게 기여했다. 독일에서 감자 요리가 발전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반대로 감자 때문에 인구가 반감된 나라도 있다. 일찍부터 감자가 전파돼 ‘감자와 양배추 볶음’류의 요리까지 개발됐던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뿌리가 썩는 식물전염병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미국이나 호주로 떠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감자는 약 200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구황식물로 쓰였다. 유럽의 식탁에 오른 지 430여년이 지난 오늘날, 감자는 세계가 공유하는 영양 공급원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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