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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라틴통화동맹의 깨져버진 꿈

1865년 佛 등 5개국 참여

1865년 12월23일 프랑스와 이탈리아·스위스·벨기에가 라틴통화동맹(LMU·Latin Monetary Union)을 맺었다. 가맹국들이 금은 복본위 제도하에서 은 4.5g 또는 금 0.290322g으로 주화를 제조하자는 게 LMU의 골자. 각국은 화폐교환에 따른 비용을 줄이고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며 국제통화로 발돋움하기 위해 통화동맹을 결성했다. 프랑스는 세계무역을 쥐락펴락하는 영국의 파운드화에 버금가는 프랑화를 꿈꿨다. 가맹국도 갈수록 늘어났다. 그리스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바티칸시국(교황청)에 일부 남미 국가도 끼었다.

라틴통화동맹 당시 만들어진 5프랑짜리 동전. /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처럼 직접 가입하지 않았어도 LMU의 주조 기준에 따라 주화를 제조하는 나라도 많았다. 잘나갈 것 같았던 LMU는 곧 삐걱거렸다. 가장 큰 요인은 추가 영입 실패. 영국과 미국이 관심을 두지 않아 비주류 국가들의 모임으로 굳어버렸다. 결정적으로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의 정치력·지도력이 약해졌다. 국제 은 가격이 요동치며 세계가 금은 복본위 제도에서 금본위 제도로 이행, 은화에 대한 비중이 큰 역내 국가들의 영향력 역시 줄어들었다.

회원국들은 갈수록 서로를 못 믿었다. 어처구니없게도 함량이 떨어지는 은화를 고의적으로 발행, 다른 은화와 교환해 차익을 갈취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리스와 바티칸시국이 이런 이유로 동맹에서 축출된 적도 있다. 이름만 유지되던 LMU는 1차 세계대전에서 각국이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불태환지폐를 대량 발행하면서 생명력을 잃었다. 결국 1927년 벨기에가 각국의 통화정책을 전면 비판하며 탈퇴, 종말을 고했다. LMU에 영향받아 탄생한 1873년 스칸디나비아통화동맹도 비슷한 길을 걸어 정치적 결합력이 떨어지는 통화동맹은 지속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겼다.



통화동맹은 역사는 장구하다. 기원전 2세기 소아시아 도시국가들이 통화동맹을 맺은 기록이 있다. 중세 독일에서도 작은 나라들이 같은 통화를 썼다. 그러나 근대 이후 등장한 통화동맹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깨진 통화동맹만 루블화권을 비롯해 70여개에 이른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통화동맹은 3개뿐이다. 독립기의 미국 13개 주의 통화동맹과 통일 직전의 사르디나 왕국이 군소국가들을 묶으며 90여종의 주화를 리라화로 단일화한 이탈리아통화동맹, 관세동맹을 기반으로 형성된 독일통화동맹만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하나같이 정치적 통합이 일어난 곳이다. 남과 북의 통화동맹도 논의되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소망한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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