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의 트윗 하나가 세계 외교가를 들썩이게 했다. 트럼프는 유대교의 최대 명절 하누카를 축하한다며 촛대 사진과 함께 ‘해피 하누카’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그리고 몇 시간의 간격을 두고 ‘메리 크리스마스’ 사진을 하나 더 올렸다. 기독교도인 그가 유대교를 앞세운 것을 놓고 당시 이스라엘 정착촌 건립을 둘러싼 유엔 투표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가 나는 이스라엘 편이라는 주장을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다.
히브리어로 ‘봉헌 축제’를 의미하는 하누카는 기원전 165년께 유대인들이 시리아의 폭압에 대항해 전국적인 차원의 항전을 일으킨 뒤 예루살렘 성전 탈환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설치된 모든 우상을 걷어내고 촛불을 켜는 방식으로 유대교 예식을 되살렸다. 이때 촛불에 불을 붙이는 데 태울 기름이 하루 치밖에 없어 애를 태웠지만 8일간이나 촛불이 꺼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유대인들은 하누카 기간 동안 아홉 개의 촛대가 가지처럼 연결돼 있는 ‘하누키야’에 차례로 불을 밝히고 기름으로 튀긴 음식을 즐겨 먹는다. 그래서 하누카를 ‘빛의 절기’라고도 부른다.
하누카가 유대교 명절로 자리 잡은 데는 1880년대 시오니즘 운동의 영향이 컸다. 세계 각국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국가재건운동으로 뭉치게 만드는 정신적 동기를 부여하는 상징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광장에 대형 촛대를 세워놓고 운집한 군중들을 대상으로 유대 국가 건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2008년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에 ‘캐스트 리드’라는 작전명이 따라붙은 것도 이런 영토 확장에 대한 각별한 의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캐스트 리드는 유대인 가정에서 하누카 기간에 팽이 놀이인 드레이델을 하면서 부르는 노랫말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의 하누카 행사장에서 랍비를 겨냥한 반유대 테러사태가 발생해 미국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영국 런던에서도 유대교회당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서 반유대주의 낙서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세밑 유대교 축제가 폭력과 증오로 얼룩졌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부디 새해에는 지구촌에 화해와 평화의 물결이 넘쳐나기를 바랄 뿐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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