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이은 규제로 재개발·재건축 사업 추진에 따른 손해가 늘어나면서 정비사업 조합 내에서 ‘조합장 해임’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정비사업 과정에서 조합 지도부 교체는 조합원들이 가장 꺼려 하는 ‘사업 지연’을 초래하기 때문에 가장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 앞의 금전적 손실이 커지면서 손해를 감수하고 초강수를 두는 경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본격 시행될 경우 조합원들의 추가분담금이 늘어나는 등 손실 폭이 더 커지면서 이 같은 분쟁은 더 확산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조합장, “손실 책임져라” = 1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조합장을 해임했거나 해임 총회를 개최할 예정인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 조합은 지난 8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현 조합장의 자격정지 결정을 내렸다. 공사비 증액으로 가구당 수 천 만원 규모의 추가분담금이 발생하고, 인근 유치원 소유주와의 법정 공방 등으로 사업이 지연된 데 따른 것이다. 조합원들은 조합장 해임 안건을 처리할 임시총회를 개최하기 위해 해임 동의서를 걷고 있는 중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4구역 재개발조합은 19일 임시총회를 열고 현 조합장 해임 안건 투표에 나설 예정이다. 한남4구역은 2009년 정비구역으로 지정 고시된 후 현재 재정비촉진계획변경안 통과를 위해 서울시와 협의를 진행 중인 상태다. 사업 진척이 더딘 책임을 물어 조합장을 교체하고 사업 진행 속도를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서울 은평구 수색8구역도 조합장 해임을 추진하고 있다. 현 조합장이 약 12년 간 조합을 이끌면서 사업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이유다. 이밖에 가락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한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조합원들은 지난 11일 임시총회를 열어 현 조합장의 해임안을 가결했다. 공사비 증액을 이유로 총 685억원의 조합원 분담금이 추가되면서 반발을 산 탓이다.
◇ 상한제 發 분쟁도 본격화 = 이런 가운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이 같은 분쟁을 더욱 부추킬 것으로 보인다. 조합과 상가 조합 간 합의가 늦어지면서 분양가상한제를 맞게 될 가능성이 커진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조합에서도 조합장 해임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장 해임을 위한 임시총회 소집동의서를 걷고 있다. 사업 추진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한제 적용으로 추가분담금까지 대폭 늘어나자 일부 조합원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정비업계에서는 연이은 조합장 해임 추진에 대해 최근 정부와 서울시가 각종 부동산 규제로 정비사업 추진에 제동을 걸면서 조합 내부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조합장 교체’는 조합 내 분열을 초래해 사업 지연과 불확실성을 키워 조합들이 가장 꺼리는 일이지만 눈앞의 손해가 커지면서 결단에 나섰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분양가 통제로 인해 추가분담금이 늘어나는 등 손실이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조합 분쟁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해임 과정에 따른 비용 지출이 상당한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해임 과정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면 불필요한 사업비 지출과 사업 지연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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