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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선물" 유가족-장기이식 미국인 만남... 국내선 불가능

국내 장기기증운동 30년 기념

한국 유학생에게 장기 이식받은 미국인 한국 방문

"한국도 유가족과 이식인 간 서신 교류 허용해야"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기기증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기이식법 개정하라’기자회견에서 뇌사 장기기증한 고(故) 김유나 양의 어머니 이선경(왼쪽 두번째) 씨가 이식인 킴벌리 씨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쁘고 건강한 모습을 보니 우리 가족도 위로가 되네요.”

지난 2016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 김유나양으로부터 신장·췌장을 이식받은 킴벌리씨를 보자 이선경씨는 눈물을 흘리며 이같이 말했다. 킴벌리씨를 포옹한 이씨는 “유나의 장기를 기증받아 킴벌리가 건강을 되찾고 아몬드 가득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울컥했다”며 “킴벌리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유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희망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11년 아들의 뇌사로 장기기증을 결정한 장부순씨는 김유나양 부모와 킴벌리씨 모녀가 만나는 모습에 눈물만 흘렸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였던 장씨의 아들은 창업을 준비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 장씨는 장기기증이라는 힘든 결정을 했지만 이후 “엄마 잘한 결정이었지?”라고 스스로 묻는 일이 많았다. 장씨는 “아들의 생명을 이어받은 누군가로부터 ‘고맙다’, ‘건강히 잘 살겠다’는 편지 한장만 써주었더라면 큰 슬픔에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국내 장기기증 운동 30주년을 맞아 이식인과 유가족 간 서신 교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장기기증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유가족에 대한 예우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박진탁 운동본부 이사장은 “자녀가 장기기증을 한 가족들은 누가 (기증) 받았는지,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부작용 없이 가족들을 위한 편지 교환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해보지도 않고 있다. 못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본부는 이날 국내 장기기증운동이 시작된 지 30년 되는 해를 맞아 김유나양 부모와 킴벌리씨의 만남을 주선했다. 19세 때 김양의 장기를 이식받아 건강을 회복했다는 킴벌리씨는 “유나는 나에게 신장과 췌장만을 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줬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기기증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기이식법 개정하라’기자회견에서 기증 유가족과 이식인이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같은 만남은 이식인과 기증 유가족 간 교류를 허용한 미국에서 이뤄진 장기기증이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에선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에 따라 기증자와 이식인 간 교류를 금지하고 있다. 장기기증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로 20년 넘게 법은 개정되지 않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증 유가족들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같은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미국, 영국 등에서는 장기기증 관련 기관의 중재를 거쳐 유가족과 이식자 간 교류를 주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장기기증 후 한달 지나면 기관에서 유가족에게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의 정보, 이식결과, 이식 전 건강상태, 이식 후 변화된 점 등을 담은 편지를 전달한다. 기증 후 6개월이 지나면 이 기관에서 이식인의 편지를 유가족에게 보내고 만남까지 주선해준다.

이식인이나 유가족 중 어느 한쪽에서 이를 원치 않을 경우 교류는 바로 제한된다. 편지 내용과 관련해서도 △유가족에 감사하고 가족을 잃은 그리움에 공감을 표현하기 △이식인의 삶, 직업, 가족·친구, 취미, 관심사 등에 대한 정보 공유하기 △이식인의 도시, 주소, 본인 이름, 전화번호, 병원·의사 이름 등 구체적인 정보는 명시하지 않기 △이식 경험과 이식 후 삶에 대해 공유하기 등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다.

한국은 서신 교환을 법적으로 막은 채 유가족에게 기증 직후 보건복지부장관 명의의 ‘생명나눔증서’와 질병관리본부장의 ‘감사의글’만 지급하고 있다.

2000년 췌장과 신장을 이식받은 송범식씨는 “매일 아침 일어나 샤워를 할 때 신장이 있는 위치를 만지며 기증인의 사랑과 나눔을 기억한다”며 “서신 교류는 기증인 유가족에게도 큰 위로가 되고 이식인에게도 더 큰 용기와 삶의 이유를 불어 넣어주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국내법이 20년째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이 뇌사 장기기증인은 해마다 줄고 있다. 2016년 573명에서 지난해 450명으로 감소했다. 반면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같은 기간 2만4,600명에서 3만2,000명으로 증가했다. 김동엽 운동본부 사무처장은 “건강을 되찾은 이식인의 편지를 받는 것은 유가족에게 큰 기쁨”이라며 “기증인과 이식인 간 교류가 시작돼 유가족 예우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얻는다면 정부가 걱정하는 부작용보다 장기기증 활성화에 기여하는 바는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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