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청론직설]"신산업 태동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은 '걸면 걸리는' 시행령 남발"

<고경곤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

임금·인허가 등 정부가 모든 걸 간섭해야 한다는 인식 문제

10년전 처리됐어야 할 데이터법 이제 해놓고 생색내기 한심

네거티브 규제 전면 도입으로 '혁신 선순환 구조' 만들 필요

獨·英처럼 규제영향 사전평가 의무화로 '입법 남발' 막아야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전자제품박람회(CES)를 둘러본 고경곤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규제개혁당 창당준비위원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뇌파로 마우스를 조작하고 안경으로 인명사고를 방지하는 장치 등 국내에서는 거미줄 규제로 엄두도 내지 못할 첨단기술이 잇달아 선보였기 때문이다. 고 회장이 최근 기업인들과 함께 규제개혁당을 만들겠다며 나선 것도 이런 규제 공화국으로 머무른다면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에서다. 고 회장은 “혁신과 개혁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성장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과감한 규제혁파만이 한국 경제의 살길이라고 역설했다. 창당 준비로 바쁜 고 회장을 만나 현장에서 느끼는 규제의 실상과 해법, 창당 배경 등을 들어봤다.

고경곤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은 “오죽하면 규제에 숨막힌 기업인들이 규제개혁을 목표로 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섰겠느냐”면서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에 대한민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좌우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호재기자






-연초에 CES를 찾은 기업인들 가운데 위기감을 느꼈다는 이들이 많았다. 우리가 그만큼 글로벌 흐름에 많이 뒤처져 있다는 얘기인가.

△CES에서 현대자동차가 우버와 손잡고 개발한 개인용 비행체(PAV·Personal Air Vehicle)를 공개한 자리에서 공무원들이 최고라며 추켜세우는 모습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만약 현대차가 우버와 추진하는 사업을 한국에 들여온다면 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최소한 8개는 넘을 것이다. 공유경제도 그렇거니와 드론, 데이터 셰어링 등에도 걸림돌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첨단산업과 서비스·기술이 규제에 막혀 변방국가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혁신 기업가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돼 해외로 내몰리고 있다. 툭하면 없던 법도 만들어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지 않나. 그게 바로 한국의 참담한 현실이다.

-우리는 규제가 그렇게 심한가. 나름 정부에서도 애를 많이 쓰고 있는데.

△규제개혁위원회가 1998년에 출범했는데 아무리 읍소해도 더 많은 규제가 생겼다. 문제는 입법 못지않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시행령과 시행규칙이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구체적인 사안을 모호한 시행령으로 떠넘기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공무원들은 자기들이 생각지 못한 것을 가져가면 기다리라고 한다. 부지하세월이다. 정부가 기업에 시시콜콜 지시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오죽하면 기업인들 사이에서 ‘규제의 샘’이라는 말이 나오겠나. 규제가 하나 생기면 공무원들이 먹을 샘이 생겼다며 옹기종기 모여 먹고산다는 얘기다. 규제가 생기면 협회가 만들어지고 인증제도가 탄생한다. 공무원이 규제로 먹고사는 세상이다.

-그래도 최근 업계의 숙원이던 ‘데이터 3법’이 통과된 것은 의미가 있지 않나.

△여당에서 데이터법 통과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내건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10년 전부터 규제를 풀어달라고 외쳤는데 뒤늦게 생색을 낸다니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10년 전에 풀어줬으면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한번 싸워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10년의 격차가 생겼는데 어떻게 쫓아갈 수 있겠나. 게다가 시행령에 담길 독소조항과 또다시 싸워야 한다. 규제로 장난치고 기업을 우롱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규제정책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규제개혁당이 주장하는 큰 그림은 뭔가.

△현재의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벗어나 네거티브 시스템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 국민 생명이나 국가 안위와 관련된 사안을 제외하면 모두 허용해야 마땅하다. 대신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면 징벌적 조치를 내리라는 것이다. 어느 기업인이 패가망신을 감수하고 잘못을 저지르겠나. 기업이 신사업으로 돈을 벌면 세금을 많이 내고, 이를 토대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기업도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뇌물구조나 공무원 유착도 저절로 없어진다.

-규제 문제를 풀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규제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마인드가 팽배해지면서 갇힌 사회에 머무르는 것이다. 무엇보다 함부로 법을 만들어 국민을 일정한 상자 안에 집어넣겠다는 국회의 개별 입법부터 막아야 한다. 그러자면 독일이나 영국처럼 규제를 새로 만들면 규제영향 사전평가를 거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위상을 공정거래위원회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필요하다. 규개위가 의원 입법을 견제하고 공청회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함부로 규제 입법에 나서지 못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공무원과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시행규칙이 판치고 일선 공무원들이 경제활동을 주도하며 ‘사무관의 나라’로 불리는 현상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그래도 정부는 공무원 증원에 한사코 매달리는 분위기인데.

△공무원 증원은 문재인 정부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혁파를 외치면서도 해결되지 않은 것은 공무원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공무원 늘리기는 큰 문제다. 그들이 사회를 위해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는지 진짜 궁금하다. 오히려 우리 발목을 잡고 나라를 수렁으로 빠뜨린다고 생각한다. 모두를 공무원으로 만들면 누가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겠는가. 한 통계에 따르면 행정규제로 발생하는 비용이 연간 150조원인데 이 중 행정비용이 43조원이라고 한다. 규제 관련 사안을 조사하고 쫓아다니는 데 드는 비용이다. 벤처를 창업하라고 자금을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인을 때려잡는 데 매달리는 셈이다. 이 병든 나라를 어떻게든 치유해야 한다.

-정부가 기업인을 보는 인식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인가.

△우리도 이제 기업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을 바꿔야 한다. 예전처럼 탐욕스럽거나 사회에 해를 끼치는 기업인들은 거의 없다고 본다. 기업가정신이 높아지고 도덕심이나 사회적 역할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도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대한민국 최고경영자(CEO)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다. 창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걸리는 게 너무 많다. 임금 문제와 노사관계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배임죄는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악법이다. CEO들을 함부로 옥죄는 일부터 과감히 없앨 때가 됐다.



-최근 ‘타다’ 경영진이 법정에 선 모습을 지켜보며 참담하다는 이들이 많다.

△국회가 타다금지법을 새로 만드는 것은 진짜 반칙이다. 그러면 안 된다. 과거 1970년대에 우마차 인부를 보호하기 위해 택시 면허를 규제하겠다고 했더라. 50년 전의 낡은 논리가 지금 그대로 작동하는 셈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괜찮았다. 패스트 팔로어로 따라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판국에 편협한 논리로 기업을 옥죈다면 과연 제대로 경쟁이 되겠나. 어떤 창의적 비즈니스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서 기업인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자유로운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제조업이 위기라는 말을 한다. 한국의 신성장동력은 어떻게 활로를 찾아야 하나.

△우리는 정부가 나서 모든 사업을 하지 말라며 한사코 가로막는 세상이다. 데이터법이 늦어지면서 클라우드 시장을 뺏기고 자율주행차 등 먹을 만한 게 없어졌다. 빅데이터는 데이터법에 의해 가로막혀 있고 드론은 안보상황이라는 이유로 어렵다. 디지털 헬스는 의료계의 장벽에 가로막혀 꿈도 못 꾼다. 한때 세계가 부러워하던 게임산업이 왜 위기를 맞았는가. 정부가 도입했던 셧다운제가 게임은 악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잘나가는 분야도 법을 만들어 규제하는 판국이다. 이제는 과거 제조업의 성장 신화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혁신가들이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젊은 세대에게 실험과 도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 그래서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키워 끊임없이 성장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할 때다.

-노동시장 개혁도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노동개혁과 관련해서는 주 52시간근로제가 대표적인 규제라고 본다. 정부가 왜 그런 것까지 관여하나. 기업가 입장에서는 노동규제야말로 심각한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당장 마스크를 만들어야 하는데 주 52시간제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게 말이 되나.

-최근 창당 과정에서 느닷없는 규제로 곤욕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창당 등록을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발기인 동의서를 제출했더니 ‘원본’이 아닌 ‘사본’이라며 반려하더라. 동의서를 사진과 복사본 형태로 e메일로 받아 제출했는데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사본 규정이 없다고 원본을 고집하는 행태야말로 시대에 맞지 않는 대표적인 포지티브 규제가 아니겠는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낡은 관행만을 고집하는 행태에 헛웃음만 나왔다.

-일각에서는 기업인들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는 여야 어느 편을 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진영 논리로 편 가르기를 하는 구태야말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규제개혁을 일종의 문화운동으로 보고 있다. 지금 당장 어렵더라도 20년 후에 정치활동을 펼치는 젊은 정치세력을 키우는 게 목표다. 길게 보고 우리가 씨앗으로 작용해 규제에서 해방돼 창의력이 넘쳐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국민과 기업을 옥죄고 계도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나라가 바뀐다. 그런 점에서 정부 부처에서 우리 활동에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규제개혁당의 목표는 뭔가.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도의 득표율을 기대하나.

△우리는 기업인이다. 정치인은 꿈도 꾸지 말자고 뜻을 모았다. 단지 규제와 관련된 분위기가 달라져 젊은이들의 상상력이 해방되고 창의성이 살아나는 나라를 원한다. 만약 이번에 3%를 얻으면 다음 총선에서는 모두가 규제혁파를 얘기할 것이다. 우리는 작은 씨앗이 되겠다. 한 명이라도 원내에 진입한다면 오직 규제혁파를 목표로 온몸으로 뛰겠다.

ssang@sedaily.com

He is…

1963년 대전에서 태어나 남대전고와 홍익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에서 미디어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애드코리아 광고기획을 거쳐 코카콜라의 디지털마케팅 총괄을 맡아 ‘붉은 악마’ 응원단을 이끌었으며 LG전자 중국총괄 마케팅팀장으로 활동했다. KT 온라인마케팅 전문임원과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아시아마케팅 총괄 부사장을 지내는 등 디지털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현재 비영리단체인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를 이끌고 있으며 알피오플레닛 대표이사와 디자인진흥원 공동혁신위원장, 새로운대전위원회 과학경제분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