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만 해도 자정이 넘으면 집 밖을 돌아다닐 수 없는 ‘야간통행금지제도’가 있었다. 새벽 4시까지 심야 4시간을 꼼짝할 수 없었으니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0시간인 셈이었다. 1981년에 서울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자 광복 이후로 치안을 위해 시행된 이 ‘통금’이 문제로 지적됐다. 당시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자율화를 강조한 개방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던 때였다. 정부는 1982년 1월 5일 자정부로 전격 ‘통금 해제’를 선언했다.
잃어버린 4시간을 회복한 ‘24시간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으니 과연 사람들은 더 자유롭게 느끼고 심야시간을 활용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을까? 신간 ‘24시간 시대의 탄생’의 저자는 “통행금지 해제 이후 심야 시간은 ‘휴식의 시간’이나 ‘침묵의 시간’이 아닌 ‘노동의 시간’이 됐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 사회적 시간의 개발과 재구성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책을 통해 24시간 시대의 시간이 어떻게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자원으로 활용됐는지를 정교하게 파헤쳤다.
그 근거로 저자는 직업인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이 1981년 7.02시간에서 1987년에는 7.40시간으로 늘었고, 자유시간은 3.33시간에서 3.25시간으로 줄었다고 통계치를 인용한다. 공장은 24시간 3교대 방식을 도입했고 학교는 보충학습과 자율학습 등으로 학습시간을 늘렸다. 1980년대 의약품 판매 순위 1위부터 3위까지가 박카스,원비디,우루사 등의 피로회복제였으니 이는 사람들이 지쳤음을 방증한다.
컬러TV의 보급은 일견 사람들의 문화 향유 수단으로 여겨지지만 아침방송의 재개, TV과외 등 전 국민의 생활리듬이 방송 편셩체제와 맞물려 동시화되기에 이른다. 아침 7시 뉴스와 저녁 9시 뉴스, 그 앞뒤로 가족용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방식으로 방송사는 국민들의 ‘일상적 규칙성’을 고정시켰다. 저자가 “또 하나의 국민 시계, 텔레비전”이라고 명명한 이유다. 한국방송공사(KBS)가 국익과 건전한 사회풍토 조성을 명분으로 1981년부터 실시한 ‘국민생활시간조사’가 “신군부 정권의 정책 수립을 위해 활용됐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국민의 일상시간은 국가 자원으로 취급됐다”고 지적한다. 말로는 자유를 강조한 당시 정부는 극장에서 애국가를 상영하고 오후 5시면 전국에서 일제히 국기하상식을 진행하며 국민의 시간을 제어했다. 이는 반대여론에 밀려 1989년 1월에 폐지됐다.
책은 “1980년대 시간성은 1990년대 기업의 시간경영 담론과 개인의 시간계발 담론을 생성했고, 오늘날에도 이는 유효하다”고 결론짓는다. 1만8,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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