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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 "기업 간섭 말아야 경제 숨통…혁명 수준의 규제 혁파 서둘러야"

■이우영 초대 중소기업청장

성장·수출·고용 등 경제 성한 데 없는 전대미문 위기

전문가 중심 규제철폐위원회 설립 등 특단 대책 시급

'기업 지켜야 대한민국 산다' 국민공감대 형성도 절실

한은 근무당시 "국회의원들 정신차려라" 호통치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제 전반에 대한 위기감이 높다. 일각에서는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버금갈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온다. 정부도 소상공인 지원과 수출기업 우대 등 나름의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작금의 경제위기를 넘기기에 역부족이라는 견해가 많다. 이런 미증유의 위기상황을 맞아 과거 한국 경제 부흥기를 이끌었던 이우영 초대 중소기업청장을 만나 국난 극복의 지혜를 들어봤다. 이 전 청장은 “지금 나라 경제는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라며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기업에 간섭하지 말고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전 청장은 최근 자신의 공직 경험을 담은 회고록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온 흙수저 인생’을 펴냈다. 이 전 청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6일 서울경제신문 회의실에서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 가운데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보면 어느 한 군데도 성한 데가 없다. 성장이나 수출·고용에 이르기까지 모두 어렵다. 그나마 물가는 안정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게 더 위험하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해서 디플레이션에 시달리지 않았나.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 수준에 달해도 관리를 잘못하면 또다시 외환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당장은 괜찮겠지만 무역흑자 추세를 고려하면 관리를 잘해야 한다. 가계든 정부든 돈을 모으기는 힘들어도 쓰기는 쉽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뭔가.

△지금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 길밖에 없다. 기업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기업이 의욕을 갖고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경제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하는 것 아닌가. 정부는 기업이 잘하도록 방향과 환경만 조성하면 된다. 그게 전부다. 사실 정부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규제개혁이다. 규제개혁이니 규제혁파니 말이 많지만 지금 혁명적인 수준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이 수백 개라고 하는데 법을 하나 만들면 반드시 규제가 따라붙는다. 게다가 공무원이 손만 대면 규제가 새로 만들어지고 대통령이 아무리 명령해도 먹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규제로 먹고사는 공무원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공무원 가운데 진짜 정책을 집행하는 비율은 30%에 머무르고 나머지 70%는 기업을 옥죄는 규제 때문에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우영 초대 중소기업청장이 “모든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은 창의성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라면서 “규제혁파는 과감히 민간에 맡겨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결국 지나치게 많은 공무원이 문제라는 얘기인가.

△우선 공무원 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공무원을 줄여 규제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러자면 규제를 받는 사람들, 바로 기업들이 문제점을 찾아 개선작업 전면에 나서야 한다. 가령 중소기업중앙회 안에 업종별 조합이 많지 않나. 그런 곳에서 아이디어를 취합하되 심사도 정부에 맡겨서는 절대 안 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발굴하고 필요하다면 퇴직자들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 중심으로 대통령 직속 규제철폐위원회를 만들어 심사 작업을 거쳐 대통령 긴급명령에 준하는 조치를 발동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단지 지시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규제혁파는 불가능하다.

-지금도 총리실이 주도하는 규제개혁위원회 같은 해결 창구가 있지 않은가.

△과거 경제장관회의나 규제개혁위원회에 수십 번 참석해봐도 신발을 신고 가려운 발바닥을 긁는다는 ‘격화소양(隔靴搔양)’이나 마찬가지다. 경제단체들이 아무리 건의해봐도 소용이 없다. 정부 부처 신문고나 청원게시판도 마찬가지다. 어느 중소기업이 굴뚝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주범인 속스(황산화물), 녹스(질소산화물)를 없애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청와대 청원을 넣었는데 환경부에 이관했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부처끼리 떠넘기고 책임지지 않는 풍토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부처 이기주의가 기업 활동의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많은데.

△부처 이기주의가 가장 큰 문제다. 모든 부처들이 영역 싸움을 벌이지 말고 국가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결국 그런 조정작업을 대통령이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청와대가 할 일이다. 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각 부처에서 할 일이 없어졌다는 말이 많더라. 전부 청와대가 도맡아 일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제1차 오일쇼크 당시 외환위기를 막는 데 앞장섰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평생의 큰 보람은 1차 오일쇼크 때 한국은행에서 외환위기를 막느라고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이다. 1973년 오일쇼크가 터지고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니 원유 수입에 따른 외화 부담이 컸다. 그래서 고민 끝에 외국은행 국내 지점을 활용해 외화를 조달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환율을 시장가치에 연동시키고 한은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당시 재무부를 설득하고 외국은행으로부터 달러를 확보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지만 국가부도 위기를 막았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김영삼 정부 당시 초대 중소기업청장을 맡아 고생이 많았을 듯하다.

△중소기업청이 처음 생길 때 정책 전반을 다듬고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 대책을 마련하는 등 준비할 일이 태산 같았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중소기업청장도 경제장관회의 공식 멤버로 참여시키자고 건의했다. 그랬더니 대통령이 국무회의에도 참석하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그해 경제장관회의에서 외환보유액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올라왔지만 문제만 제기됐을 뿐 대책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입에 거품을 물고 큰일 난다고 주장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을 뿐이다. 다급한 마음에 대통령 면담도 신청했는데 실현되지 못했다. 지금도 그때 IMF 외환위기를 사전에 막지 못한 점은 아쉽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은 어떤가. 과거 국회의원들을 앞에 놓고 훈계한 적이 있다고 하던데.

△한은 이사 시절 국정감사를 나온 국회의원들에게 저녁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나라를 좀먹기 위해 있는 게 국회의원입니까? 국회의원들 정신 차리시오”라고 호통친 적이 있다. 다음날 국회의원을 일일이 찾아가 사과했다. 국회는 여전히 문제다. 무엇보다 국회의원 수를 현재의 300명에서 100명으로 확 줄여야 한다. 요즘도 봐라. 공천 여부를 놓고 난리법석이다.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혜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진짜 일하는 국회를 만들고 나라 걱정하는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자면 국회가 권력을 누리는 게 아니라 봉사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기업은행장 시절 사표를 가슴속에 넣고 다녔다는 얘기도 들었다.

△기업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직원들에게 한가지 약속을 했다. 내 후임은 반드시 기업은행 출신 인사가 임명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이다. 나는 평소 인사가 만사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인사만 잘하면 은행장의 일 가운데 99%를 완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은행장을 맡은 지 6개월 만에 청와대 경제수석실로 불려가 모 임원의 연임을 부탁받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라가 잘되자면 청와대뿐 아니라 기업도 잘되고 은행도 잘돼야 한다고 설득했다. 기업은행이 자리 잡으려면 올바른 인사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때 내 주머니에는 미리 써간 사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수석실을 나오면서 “대통령 좀 잘 모시라”고 한마디를 남겼다.

-공직을 나와 투명한 기업경영 운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업인들이 모여 경제 투명성을 높이고 정직하게 기업을 경영하는 사회운동을 해보자고 해서 ‘바른경제동인회’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국세청과 협의해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세금 탈루를 방지하고 기업을 정직하게 경영하는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국세청을 도와주는 일인데도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한국은행 재직 시절 한은 독립성 확보에 앞장섰다고 하더라. 지금 한은의 위상을 어떻게 보는가.

△한은 이사로 있을 때 내가 앞장서 한은 독립성 확보를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을 벌였다. 직원들과 함께 절이나 교회를 찾아가고 등산로 입구에서 서명을 받았다. 당시 재무부에서 나를 죽일 놈이라며 미워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과거 한은맨들은 투철한 사명 의식을 갖고 일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무기력해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공직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매사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때 항상 국가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게 이 시대 공직자들의 최고 덕목이어야 한다. 지금은 모든 게 뒤죽박죽되면서 혼란스럽고 가치관도 실종돼 걱정스럽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He is…

1936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경북대사범대 부속고와 고려대 상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1959년 한국은행에 들어가 자금부장·부원장보·이사를 거쳐 은행감독원 부원장과 한은 부총재를 지냈다. 중소기업은행장에 이어 1996년 중소기업청 초대 청장으로 발탁돼 중소기업 정책의 초석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른경제동인회 이사장과 중소기업정보화경영원 이사장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바른경제동인회 고문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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