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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車 아카데미상' JD파워, 제네시스 美 공략에도 날개 돼줄까

■JD파워 '품질 인증'의 효과는

신차·내구품질조사 연이어 최우수상 거머쥐어

美서 고전한 도요타, 수상 뒤 주가 두배 뛰었듯

렉서스 2위로 밀어낸 제네시스 인식 개선 기대

올여름 GV80도 출시…렉서스 대안될지 관심

출시를 앞둔 제네시스 신형 G80(The All-new G80)의 이미지. 제네시스가 미국 시장에서 렉서스의 대안으로 선택받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미지 제공=현대차






지난 2월은 영화 ‘기생충’의 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 4개 부문에서 수상한 것과 동렬에 서려면 월드컵 우승 정도는 해야 할까. 워낙 대단한 일이어서 웬만한 뉴스는 ‘기생충’에 묻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현대자동차가 만든 제네시스 브랜드가 미국 시장조사 업체 제이디파워의 내구품질조사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도 그런 뉴스 중 하나였다. 이 상은 옛날보다 명성이 떨어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아직은 ‘자동차 분야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내구품질조사 결과는 미국 소비자들이 차를 살 때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에서 제네시스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보다 훨씬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한 도요타 렉서스는 이 상을 받은 뒤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며 세계적으로 고급차의 대명사가 됐다. 렉서스의 미국 시장 진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제네시스가 달릴 길을 짐작해볼 수 있다.

1989년 8월1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렉서스 딜러 콘퍼런스. 도요타의 최고급 차인 렉서스LS400을 선보이는 날 스즈키 이치로 수석엔지니어는 차 후드 위에 와인잔을 올려놓고 물을 따랐다. 차는 시속 150㎞까지 속도를 냈지만 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요다 쇼이치로 도요타 회장은 “다른 이름이 쓰인 리무진 뒷자리에 타는 것은 이제 질렸다”고 말했다. LS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시카고 인근의 한 딜러는 공식 개점 전에 37대를 팔았고 론칭 한달 만에 주문이 1,000대나 들어왔다. 도요타는 이날 콘퍼런스 이벤트에서 힌트를 얻어 렉서스 후드 위에 와인잔 15개를 쌓아 올린 TV광고를 제작했고 흔들림 없는 와인잔으로 LS의 가치는 사람들에게 한눈에 증명됐다.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이때가 사실상 두번째다. 도요타는 1957년 미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에 ‘도요타차판매(TMS·Toyota Motor Sales)’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도요타가 처음 선보인 크라운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이후에도 여러 종류의 차를 출시했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다. 이유는 주행환경이 다르다는 데 있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주행거리가 짧고 고속주행의 필요성도 덜했다. 땅이 넓은 미국은 다르다. 한번 운전하면 며칠씩 걸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보통이라 그런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본 주행환경에 맞춰 제작된 도요타 차들은 미국 소비자들이 볼 때 조금만 타면 고장이 나는 장난감처럼 다가왔다. 도요타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링컨·캐딜락 등 미국 부유층이 타는 차는 무엇이 다른지 연구를 거듭했다. 사회적으로 부유하며 안정적 위치에 있는 소비자들은 어떤 가치를 원하는지 조사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렉서스는 조용하고 고장이 없는 고급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렉서스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은 결정적인 사건은 제이디파워의 내구품질조사 최우수상 수상이다. 제이디파워는 1968년 제임스 데이비드 파워 3세가 설립한 마케팅 정보 서비스 회사다. 컴퓨터·사무기기·통신·금융·호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로 설문조사를 통해 고객 만족, 제품 품질, 구매자 행동 등을 조사하는데, 특히 자동차 분야의 소비자 만족도 조사가 유명하다. 자동차 분야에서 중요한 조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구매한 지 90일이 지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신차품질조사(IQS)였고 다른 하나는 구매한 지 3년이 지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내구품질조사(VDS)였다.

렉서스가 처음 시장에 등장한 1989년에 혼다는 아큐라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았다. 이듬해 신차품질조사에서는 아큐라가 최우수상, 렉서스가 2위를 차지했고 그다음 해부터는 줄곧 렉서스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렉서스는 출시된 지 3년 뒤 내구품질조사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조사에서 모두 선두로 올라섰다. 이때를 기점으로 렉서스는 매년 판매 신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으며 도요타 주가도 덩달아 급등했다. 도요타 주가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걸프전 기간에 소폭 하락했지만 이때도 렉서스 판매 돌풍으로 하락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이후 1993년 내구품질조사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후 주가는 거침없이 올라 1년 만에 2배 이상 상승했다.



현대차의 제네시스는 2016년 8월 미국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지난해 6월 제이디파워가 발표한 ‘2019년 신차 품질조사’에서 제네시스는 가뿐히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프리미엄 브랜드 14개, 일반 브랜드 18개 등 32개 브랜드, 257개 차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제네시스는 2년 연속 전체 1위를 차지했다.

3년이 지나 내구품질조사 대상에 들어간 올해도 내구품질조사에서 당당히 최우수상을 받았다. ‘2020년 내구품질조사’는 2016년 7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프리미엄 브랜드 13개를 포함해 총 32개 브랜드, 222개 모델, 3만6,555대의 차량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제네시스가 2012~2019년 무려 8년간 연속 1위를 지키던 렉서스를 2위로 밀어낸 것은 의미가 크다. 내구품질조사는 177개 항목에 대한 내구품질 만족도를 조사한 뒤 100대당 불만건수를 집계한다.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만족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렉서스는 전년 조사에서 106점으로 최우수상을 받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품질에 더욱 신경을 써 100점으로 6점이나 낮췄는데도 2위에 그쳤다. 제네시스가 조사 대상 중 유일하게 두자릿수대 점수를 받은 것을 보면 내구품질의 수준을 알 수 있다. 1위와 2위 간 점수 차이가 11점으로 2위와 3위(포르쉐)의 4점보다 격차가 훨씬 크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1위와 2위 이하 브랜드 간 품질 차이가 매우 큰 것이다.

투자컨설팅사인 BIBR의 신동준 대표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내구품질조사 최우수상 수상을 계기로 현대차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 소비자들은 그동안 현대차는 구입 초기에는 품질이 좋지만 내구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중고차 가격도 그렇게 인식된 탓에 상대적으로 낮게 형성돼 있었다”며 “품질 하면 렉서스를 떠올리던 미국 소비자들이 렉서스를 누르고 내구품질조사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제네시스를 들여다보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내구품질조사의 명단을 보면 그동안 한국에서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벤츠나 BMW의 순위가 많이 떨어진다. 제네시스는 물론 현대차와 기아차 브랜드도 외국 유명 브랜드보다 나은 내구품질을 자랑해 현대·기아차그룹 전체적으로 품질이 개선됐음을 알 수 있다. 현대차가 품질에 신경을 쓴 지는 사실 매우 오래됐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04년 “이제는 가격 경쟁력에서 품질 경쟁력으로 브랜드 이미지 변신을 선언해야 할 때”라며 품질경영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그는 제네시스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 2016년 시무식에서 “최고의 품질과 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브랜드 가치를 획기적으로 제고해야 한다”며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차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네시스 품질에 대한 호평은 사실 제이디파워 조사 외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형 세단인 G90는 최근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충돌 평가에서 가장 안전한 차량에 부여하는 ‘톱세이프티픽플러스(Top Safety Pick+)’에 선정됐다. 지난달 G70와 G80가 톱세이프티픽플러스 등급을 받은 데 이어 G90까지 같은 등급을 획득해 제네시스 브랜드의 세단 전 라인업이 모두 최고 안전한 차로 인정받았다. IIHS는 1959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매년 출시된 차량 수백대의 충돌안정 성능과 충돌예방 성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결과를 발표한다. 그중 최고 안전성을 보여준 차량에는 톱세이프티픽플러스 등급을 매긴다. 이밖에 2018년에는 G70가 한국 국토교통부에서 선정한 ‘올해의 안전한 차’에 이름을 올렸으며 미국 소비자단체에서 발행하는 컨슈머리포트의 브랜드 랭킹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올여름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GV80를 미국 시장에 내놓는다. 이미 사전계약 대수가 6,000대를 넘은 것으로 알려져 흥행을 예고했다. 벤츠·BMW 등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는 세단 시장과 달리 프리미엄 SUV 시장은 뚜렷한 강자가 없어 현대차의 판매 돌풍이 기대된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프리미엄 SUV 시장은 동급 세단 시장과 비교해 규모가 2배 이상 크고 전통적 강자인 벤츠나 BMW의 지배력이 약해 기대해볼 만하다”고 분석했다. 제네시스 세단은 지난해 미국에서 2만대가량 팔렸다. GV80의 경우 올해 미국에서 4만대가량 판매될 것으로 증권업계는 예상했다. 이제 SUV까지 출시하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렉서스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며 이의 대안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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