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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정미조 "관객과 교감하는 음악무대, 내겐 늘 그리운 개여울이었죠"

<'개여울' 주인공 전설의 디바 정미조>

개여울·그리운 생각 등 잇따라 히트

70년대 최고 디바였지만 돌연 은퇴

파리로 미술 유학길 떠나 화가 변신

귀국후에는 서양화 교수로 후진 양성

고별무대 함께했던 최백호의 권유로

2016년 37년만에 다시 가수로 컴백

무대는 종합예술 펼치게 해주는 곳

데뷔 50돌 콘서트 등 음악에 매진할것

가수 정미조. /성형주기자




“‘소리가 제대로 날까?’ 37년 만에 앨범을 준비하기 위해 녹음실에 들어갔을 때 걱정이 앞섰어요. 그런데 녹음실에서 한번에 ‘오케이’를 받았습니다. 처음 부른 것이 하나도 안 잘리고 그대로 음반에 실린 것이죠. 열 번의 녹음 스케줄을 잡았는데 세 번 만에 끝났습니다. 앨범 제작 후에는 이게 전혀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반응도 좋았어요. 저는 노래를 다시 하는 게 굉장히 만족스럽고 좋지만 사람들이 못 들어주겠다고 하면 안 되잖아요.”

노래 ‘개여울’의 주인공인 가수 정미조는 지난 2016년 37년 만에 음악 활동을 다시 시작했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1970년대 최고의 디바에서 화가로 변신했다가 다시 가수로 돌아와 ‘제3의 인생’을 시작한 정미조를 최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그의 개인 작업실에서 만났다.

가수 정미조. /성형주기자


2016년 발매된 정미조의 컴백 앨범에는 신곡 11곡을 포함해 모두 13곡이 담겼다. 월드뮤직과 재즈를 수용한 음악적 도전과 변화가 눈에 띄는 앨범이다. 평론가들은 “결코 세월이나 명성에 빚지지 않은 앨범” “유례없이 완성도 높은 복귀 음반”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LP로도 제작된 앨범은 몇 달 만에 초동물량 500장이 완판돼 다시 찍어내기도 했다. 이어 2017년에 선보인 앨범 ‘젊은 날의 영혼’ 역시 정미조의 우아한 창법으로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담아내 화제를 모았다. 이후로도 정미조는 올 2월 MBC ‘배철수 잼’ 첫 방송에 싱어송라이터인 세시봉의 멤버 이장희와 함께 출연하는 등 꾸준히 음악 및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일반 대중들이 앨범을 사랑해주는 것도 좋지만 특히 후배 가수들이 좋다고 해줄 때 행복했다”고 말했다. 가요계를 은퇴한 후로 후배 가수들과의 접점이 없었지만 앨범이 나온 뒤로는 후배 가수들의 큰 관심이 이어졌다. 가수 바다는 직접 정미조에게 전화를 걸어 앨범에 대한 감상을 전하기도 했으며 김동률·김현철 등 많은 가수가 애정을 표현했다. ‘개여울’을 리메이크한 아이유는 리메이크 앨범을 내기 전 정미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제가 ‘개여울’을 녹음했는데 한번 들어봐주시겠느냐”며 녹음본을 보내왔다.

정미조는 1972년 데뷔하자마자 ‘개여울’과 ‘그리운 생각’이 동시에 히트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지적인 이미지와 기품 넘치는 목소리로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사랑의 계절’ 등 히트곡을 쏟아낸 그는 1970년대 최고의 디바였다. 데뷔 첫해 KBS TV 신인 무대에서 8주 연속 우승했고 MBC와 TBC TV 신인가수상을 휩쓸며 3대 방송을 모두 석권했다. 이후 MBC TV 10대 가수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1979년 돌연 가요계를 은퇴하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프랑스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 이후로는 쭉 화가의 길을 걸었다.

정미조는 “가수 활동을 하면서 매일 방송을 2~3개씩 했는데 데뷔 5년째 무렵부터는 ‘이제 노래는 할 만큼 했으니 다시 그림도 그리고 공부하자’는 생각이 들어 결심하게 됐다”며 “한국에서는 방송 출연을 피하기 힘들 테니 예술의 도시인 파리로 떠나자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정미조의 전공은 음악이 아닌 미술이다. 이화여대 서양화과에 입학한 정미조는 미대생이었지만 ‘노래 잘하는 학교 스타’였다. ‘정미조를 모르면 가짜 학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대학 2학년 때인 1969년 이대 메이데이 축제였다. 정미조는 5월에 열린 축제 무대에서 당시 유행하던 팝송 ‘왓 나우 마이 러브(What Now My Love)’ 등을 불렀다. 그 모습을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초대가수 패티김이 눈여겨보고 정미조를 불러세워 ‘패티김 쇼’ 출연을 제의했다. 다만 방송 활동을 하면 바로 퇴학 처리를 한다는 학칙상 정미조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야 가수 데뷔를 할 수 있었다.

1979년 9월, 가수 은퇴 선언을 한 정미조의 마지막 무대는 TBC가 마련한 1시간짜리 고별 쇼였다.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한 1시간짜리 프로그램은 흔치 않은 무대다. 그는 “가수를 그만둔다고 방송국에서 쇼를 해준 사람은 몇 명 없을 것”이라며 그만큼 특별한 무대였다고 회상했다. 정미조는 마지막 곡으로 평소 좋아하던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최백호와 함께 무대에서 1절과 2절을 나눠 부르고 7년간의 가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가수 정미조가 지난 2016년 발매한 앨범 ‘37년’.




그렇게 떠난 파리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헤쳐나가면서 숱한 날들을 눈물로 보냈다. 외로울 때면 샹송 ‘고엽(Les Feuilles Mortes)’을 부르고 그림을 그렸다. 그래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성대한 고별 쇼까지 한 상황에서 도망치듯 다시 한국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왜 미술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박사까지 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렇게 박사 학위까지 파리에서 땄죠.”

공부를 마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1993년부터 2015년까지 수원대 조형예술학부 서양화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유학 중에는 파리 평론가들이 뽑은 젊은 작가전에 초청받고 칸 아쥐르 국제그랑프리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음악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고별 쇼에서 마지막 무대를 함께 했던 최백호의 영향이 컸다. 정미조는 “항상 노래에 대한 그리움은 있었지만 옛날 추억일 뿐이었는데, 우연히 한 전시 오프닝에서 최백호씨를 만났다”며 “그 인연으로 최백호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목소리가 여전히 너무 좋다는 칭찬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최백호는 정미조에게 ‘왜 노래를 안 하느냐’고 여러 차례 물어왔다. 복귀 음반을 제작한 이주엽 대표도 최백호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가수에서 화가로, 다시 가수로 돌아온 정미조에게 음악이란, 또 무대란 어떤 의미일까. “전시회장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사람이 와서 작품을 볼 수 있지만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는 순간적이죠. 그림은 제가 슬픈 감정을 넣어 작품을 만들어도 보는 사람이 슬프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면 무대 위에서 슬픈 감정을 담아 노래했을 때는 즉각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죠. 제 감정 그대로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있는 것처럼 관객과 바로바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 음악의 매력인 것 같아요.”

정미조는 이어 “무대란 저에게 종합예술을 펼치게 하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렸을 때는 무용을 좋아해서 꿈이 무용가일 때도 있었다”며 “무대에서는 미술과 음악과 무용이 한번에 모두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못 이룬 무용가의 꿈을 무대에서 펼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무대에 섰을 때 정미조는 스스로 ‘프레임’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동작을 어느 각도에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지 생각하며 춤을 추고 온 감정을 담아 노래를 부른다.

가수 정미조. /성형주기자


그는 올해 또 한 장의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정미조는 “오랜만에 노래를 다시 했는데도 ‘목소리가 더 좋아진 것 같다’는 주변의 반응에 힘을 얻고 있다”면서 “이제 남은 시간은 음악에 집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2년 뒤인 오는 2022년에는 데뷔 50주년을 맞아 기념 콘서트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그때까지는 목소리가 충분히 날 것 같다”며 웃었다. 1950년생, 만 70세의 나이가 무색한 정미조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She is… △1950년 김포 △1972년 이화여대 서양화과 졸업 △1972년 ‘개여울’로 데뷔 △1975~1976년 2년 연속 MBC 10대 가수 △1979년 가수 은퇴 선언 후 파리 미술 유학 △1984년 파리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 석사 △1993년 파리제7대 박사 △1993~2015년 수원대 조형예술학부 서양화 교수 △2016년 37년 만에 앨범 ‘37년’ 발매 △2017년 앨범 ‘젊은 날의 영혼’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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