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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美가 지닌 예외적 능력 '무능'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확진자 검사 등 초기대처 실패

예산 깎이고 관료 권한은 축소

현대 연방관료제 제 기능 상실

코로나 최악 감염지역 오명





위기가 닥칠 때마다 미국인들은 성조기 아래 하나로 뭉쳐 지도자들을 강력히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늑장대처 했을 뿐 아니라 일관성 없는 단속적 접근법으로 비난을 자초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린 것도 아마 이런 연유일 터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사실을 직시하고 불편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은 경제 부국들 가운데 최악의 코로나19 감염지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위기에 처했다. 정부의 무능 탓이다. 이것이 미국 ‘예외주의(exceptionalism)’의 새로운 얼굴이다.

미국은 조만간 중국을 제치고 코로나19 최다 감염건수를 기록할 것이다. 질병의 1차 방어선은 확진검사다. 미국은 여기서 실패했다. 허점투성이 진단키트로 너무 늦게 검사를 시작했고 지금도 초기대응 실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잔인한 거짓말이었다. 대다수 선진국에 비해 미국에서는 검사받기가 훨씬 어렵다. 한국보다 더 많은 확진검사를 실시했다는 트럼프의 주장 역시 헛소리다. 한국의 인구가 미국의 6분의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은 억지 셈법에 바탕을 뒀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기준 한국은 인구 1인당 미국보다 5배나 많은 검사를 했다. 한국은 그렇다 치자. 정부의 무능이 수시로 도마 위에 오르는 이탈리아에서조차 1인당 검사 건수는 미국보다 4배나 많다.

인공호흡기에서 마스크·장갑·방호복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모자라는 것투성이다. 보급품을 적재적소에 신속히 공급하는 국가비상 시스템도 전무하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포 이후 3주가 지난 지금, 뉴욕 의료진은 일회용 마스크를 반복 착용하거나 직접 면 마스크를 만들어 쓴다며 마스크를 기증해달라고 호소했다. 에드 웡은 시사월간지 애틀랜틱에 실린 기고문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사공 없이 확실한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헛발질을 해대는 무능과 무기력의 결정판”이라고 꼬집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트럼프는 애초부터 서투른 지도자였다’며 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부실대응의 이면에는 더 큰 문제가 놓여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정부 예산을 난도질했고 독립적인 기구들을 정치화했으며 집요하게 지방통제를 강화했고 공무원들과 관료들을 함부로 비하하고 깎아내렸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제한적이고 효율적인 정부를 선호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만들어낸 현대 연방관료제는 놀랄 만큼 날렵하고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정부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기아 상태에 빠진 관료제는 점차 제 기능을 상실했다. 1950년대 전체 고용에서 연방정부 민간인 직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5%를 웃돌았다. 그 때보다 인구는 2배,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국내총생산(GDP)은 무려 7배가 늘어난 지금 그 수치는 2% 아래로 떨어졌다.

연방기관들은 산더미 같은 각종 규정과 정치색을 짙은 행정명령 및 규칙에 치인 채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관료들에게 권한이나 재량권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역기능의 대부분은 자체 기구들을 거느린 주 정부와 지방정부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 전국 차원의 통일된 코로나19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현실적으로 공중보건 분야의 실질적 권한이 각각의 독립성을 앞세우는 2,684개의 주와 시 정부 기관들로 분산돼 있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의견 조율은 고사하고 논의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미국의 연방제를 민주적 지방 분권주의의 성공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갈가리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진 짜깁기 권한으로는 국경과 지역 경계를 모르는 전염병을 막을 수 없다. 지방의 허술한 방어선 중 어느 한 곳만 뚫려도 바이러스 감염은 다른 지역으로 무섭게 번져나간다.미국이 중국의 독재체제를 그대로 따라갈 수야 없지 않으냐는 주장은 안이하기 짝이 없는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팬데믹에 잘 대처한 정부들 가운데는 한국·대만·독일 등과 같은 민주국가들도 포함돼 있다. 선별검사와 역학조사·격리 등 싱가포르와 홍콩이 동원한 최상의 대응책은 억압적이지 않고 깔끔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원이 풍부하고 대응력이 강한 효율적인 정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국경을 넘나들며 빛의 속도로 번지는 숱한 문제에 대처해야 하는 오늘날 세계에서, 한 국가를 진정 예외적으로 만드는 것은 ‘원활한 법 집행이 이뤄지는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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